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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사진-2.jpg


 계간 아라문학(주간 백인덕)이 주관하고 인천뉴스, 문화예술소통연구소, 막비시동인이 후원하는 제2회 아라작품상 수상자는 권순 시인으로 결정되었다.


권순 시인은 2014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사과밭에서 그가 온다가 있다.

 

심사평

새로움을 새롭게 정의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

-권순 시인의 작품들의 후광(後光)

백인덕

 

우리는 후광효과halo effect’를 대체로 비판적인 입장에서 사용하게 되지만, 엄밀하게 따져 시적 새로움, 즉 자기 갱신更新이라는 맥락에서 사용할 때는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새로운 장소에 대한 서정적 술회와 생경한 어휘의 진열과 해독이 어려운 비문非文적 구성을 무턱대고 새롭다라고 칭송하기 전에 새로움에 대한 용어적 정의와 그 경험치를 어느 정도 가산加算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순 시인의 시적 대상은 비교적 익숙하고, 지금 이 순간의 우리(현대 한국인)를 구성하는 여러 인자(因子)들의 복합적 구성을 보여준다. 제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 ‘발자국’, ‘칼국수와 사이다’, ‘등은 전혀 새롭다 할 것이 없는 일상의 어휘들이며 따라서 그 자체로 제한적인 자기 후광을 거느리고 있는 대상들이다. 굳이 특이한 경험이라 한다면, 어느 시점의 홍수에 대한(사고, 그 다음에 오는 것들) 경험을 서술한 것인데 그 마저도 필자처럼 물난리 잦은 곳에 살았던 인사에게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경험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시각視覺을 바꿔야 한다. 대상에 속박되지 말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각도와 분산(分散)을 읽어내고자 해야 한다. 그러면 권순 시인은 단순히 그날, 큰물이 졌다/허둥대는 아버지의 눈에서 굵은 비가 쏟아졌다‘”는 사고의 기록이 아니라, “물살이 쓸려 가는 그곳으로/낯익은 것들이 사라졌다/그 다음//한참을 제자리에 서 있었지만/새로운 것은 보이지 않았다는 진술, 즉 경험을 자기화 해서 새로운 자질資質을 부여하는 시의 경이驚異를 만나게 된다. 꼼꼼하게 읽으면 저절로 얻게 되는 하나의 자산資産이고 이런 자산을 많이 함축한 작품은 누가 뭐래도 좋은 작품이다.

권순 시인은 익숙한 대상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가졌다, 아니 그 각도와 분산을 유지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그냥 이 아니라 잠자는 등이고 형용 대상으로서의 발자국이 아니고 자다고 달아나는변화變化의 와중에 순간 포착捕捉이다. 이런 시적 태도는 반드시 시적 인식의 깊이를 요구한다. 권순 시인이 더 깊은 사유의 경지(境地)를 보여준다면 오늘 아라문학작품상의 의의意義는 스스로 빛나게 될 것이다.

 

 

수상소감

 

봄비가 내려서 보고 싶은 사람이 많아졌다. 먼 길 떠난 엄마도 보고 싶고,

사철 눈 내리는 나라에 홀로 사는 그 사람도 보고 싶다. 보고 싶어 무작정 떠난 길, 벚꽃 흩날리는 봄밤 아직 이르지만 민박집 뒤뜰에 다녀가는 자잘한 솔바람에도 빈 마음이 자꾸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은 흔들리는 대로 놓아두고, 구석에 묶인 듯 가라앉은 물빛 마음만 다잡고 돌아온다.

 

돌아온 마음에 바람 한 겹 더 숭숭하다. 훌쩍 떠나는 건 언제나 위험하다. 새순들 고개 드는 훈훈한 날들이 다 가고 나야 어지러운 마음이 접힐까. 수런거리는 봄날이 다 저물도록 여기 돌의자에 앉아 속눈썹이 무거워 눈 감은 사람처럼 가만히 어느 날을 기다린다.

 

상을 주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세상에 많고 많은 이런저런 상들이 떠올랐다. 상을 주는 쪽과 받는 쪽을 생각했다. 그 사이에 무엇이 작용하는지 궁금했다. 지극히 개별적인 작업이라 여겨지는 문학을 하는데 왜 서로 상을 주고받아야 하는지도 떠올려 본다. 여전히 서먹하지만 더욱 정진하라는 뜻만은 분명하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겸손하게 받는다. 리토피아와 아라문학 그리고 막비동인들의 따뜻한 우정에 감사한다.

 

 

 

 

수상작품

사고, 그 다음에 오는 것들

 

 

그날, 큰물이 졌다

허둥대는 아버지의 눈에서 굵은 비가 쏟아졌다

 

우리는 빗방울처럼 튀어올라

찰찰거리는 도랑을 가로질러 둑으로 달려갔다

 

붉은 물살이 거세게 흘러넘치는 그곳에

물살에 섞인 돼지들이 버둥거렸다

급류에 휘말린 것들의 아우성이 끓어오르고

절구와 찬장이 곤두박질치고

싸리비와 지게가 떠내려 왔다

물살은 자꾸 무언가를 게워냈다

물살이 제 몸을 뒤집을 때마다

우리는 마른침을 꼴깍거리며 다음을 기다렸다

 

갯버들에 잠시 결을 고르던 물살이

거품을 집어 삼키는 사이에

놋요강이 떠오르고

누런 옷가지와 이불이 떠오르고

떠오르는 것들이 출렁이는 사이에

자잘하고 낯익은 일상이 흘러갔다

 

물살이 쓸려 가는 그곳으로

낯익은 것들이 사라졌다

그 다음

 

한참을 제자리에 서 있었지만

새로운 것은 보이지 않았다

 

 

 

잠자는 등

 

 

잠자는 등이 비를 맞는다

버스터미널 소음들이 비에 젖는 줄도 모르고

버즘나무가 젖은 보따리를 둘러메고

강으로 달아나는 줄도 모르고

등 너머 고요에 물든 듯 혼자만 적막하다

그는 지금 어디에 속해 있는 것일까

 

잠자는 등이 웃는다

노을빛에 한쪽 눈을 지지고 떠났던 첫 여자가

아이를 업고 돌아오는 줄도 모르고

버즘나무 성화에 몸 열었던 앞강이

다투어 짐을 싸는 줄도 모르고

안팎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려는 듯 웃는다

누군가 핏발 선 눈으로 웃는 등을 핥고 있다

붉은 그 눈은 웃는 등에 속해 있는 것인가

등 너머 아득함에 속해 있는 것인가

 

잠자는 등에 마지막 비가 내린다

속옷까지 젖은 버스가 멈춘다

소음들이 마지막 비를 통과한다

돌조개 무덤을 지나온 빗방울이 강으로 뛰어든다

선잠 깨어 어디에 속할지 모르는 것들이

부지런히 자리를 뜬다

 

 

 

발자국이 자란다

 

 

눈밭에 발자국이 난무하다

고만고만한 걸음들이 눈밭에서 자라고 지워지고

 

갱지에 글을 쓰듯 또박또박 옮긴 걸음, 거만하게 발뒤꿈치에 힘을 주고 간 걸음, 성질머리 급해서 앞꿈치가 깊게 찍힌 걸음, 날렵하게 뛰어간, 어슬렁거리며 천천히 지나간, 흔적을 남기기 싫은 듯 슬쩍 스친 걸음이 서로 다투어 걷는다 걸음은 나란히 가는 것 같지만 늘 다투는 것인지도 모른다

 

발자국에 바람이 담긴다

 

걸음이 걸음을 기다린다 바람이 가져다주는 다른 걸음의 몸을 받는다 다른 걸음을 생김새대로 받아주던 어떤 걸음은 그지없는 눈밭이 되고

 

너무 일찍 집을 나선 어떤 걸음은 섞이지도 자라지도 못해 그 자리가 제 감옥인데

 

언 발은 왜 비굴할까

비굴한 걸음이 숨을 곳을 찾는다

 

앞꿈치와 뒤꿈치를 동그랗게 말아 올린 걸음이 앞서 간다 얌전하게 떼어놓은 수제비 같은 말랑한 걸음이다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 걸음이다

 

어떤 삶이 지나간 자리일까

 

바람이 뒷덜미를 당긴다

거기, 흩어져 구불거리는 내 걸음이

어지럽다

 

 

 

칼국수와 사이다

 

 

갯가에 늘어선 조개구이와 해물칼국수 사이에

백합칼국수가 있다

 

지금은 점심과 저녁 사이다

민박집과 편의점 사이를 지나 앳된 커플이 들어온다

 

커플은 사이다를 먼저 마신다 여자애는 마틸다를 닮았다

둘의 목 넘김이 격렬하다

사이다를 마시는 여자애를 보다가

국수 가락이 그 애 입으로 들어가는 사이를 보다가

사이사이에 밭은기침을 하는

아무도 닮지 않은 남자애를 보다가

그 사이에 또 사이다를 마시는

마틸다를 보는 사이, 네이버에는

어린 여자애 시신이 버려져 있다

 

죽은 아이 얼굴이 네이버 액정에 떠오르는 사이에

먼 사막에선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간다

 

백합 조개 통통한 살이 혀에 말려 넘어가는 사이

해거름이 붉다

 

붉은 빛이 빗살처럼 퍼지는 사이에

눈살을 찌푸린 우리는 국수를 삼킨다

국수 가락이 넘어가는 사이에

마틸다는 사이다를 마신다

 

 

 

풀이 달아나다

 

 

귀가 아닌 코끝에 끼쳐오는 소리가 있다 자잘한 화분에 담긴 키 작은 식물들이 잘 보살필 줄 모르는 주인을 만나 고생이다 시들해진 잎 모양새가 더위 먹은 사람 몰골이다 그 꼴을 보고 있다가 가위를 들었다 누런 잎과 시든 가지를 자른다 잎을 자를 때 마다 가지가 잘려나갈 때 마다 생살 찢기는 아픔에 몸을 떠는지 비릿한 신음이 난다 다른 화분 누런 잎사귀도 마저 잘라야 하는데 다급히 퍼지는 비릿함 때문에 늘어졌던 신경이 곤두선다 그 울부짖음이 폐부에 박힌다 날것에서 오는 비릿한 냄새는 곰취향 같기도 하고 은어향 같기도 하고 말 오줌이 그것들과 뒤섞인 냄새 같기도 하다 아무튼 위험에 빠진 식물이 동무들에게 보내는 신호라고 한다 어서 도망치라고 소리치는 것이란다 고막을 울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신음조차 내지 못하는 숨 끊어지는 아픔에 이제 귀가 아닌 코를 기울여야겠다 저기 풀이 또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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