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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권(65호-68호)
2018.12.19 19:19

68호/신작시/구지혜/저물녘이 더 붉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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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구지혜



저물녘이 더 붉다 외 1편


좁은 고추밭은 가없이 보였다 밭고랑 사이사이에 꽂혀 허리를 굽혔다 세웠다 하는 동안 아이의 모습이 붉게 피어오르다 지곤 했다 아무렇게나 자란 생활들이 하얀 목장갑에 어려운 먹빛 자화상을 뭉겨놓는다 점점 땅 쪽으로 늘어지는 생은 꼭지가 짓무르고 그럴수록 아이의 손끝은 백 개에서 천 개의 생을 모질게 가늠한다 고추밭 허리를 자르며 허기를 불려가는 그늘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이의 눈가가 축축이 말라 간다 더 구름을 몰고 오거나 별빛이 될 불콰한 고추를 모으지 않아도 되는 시각, 땀에 스민 옷이 어스름을 먼저 갈아입는다 작년보다 더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노을 그 저물녘에 과거로 흘러가지 못하고 아이 눈에 흥건하게 고인 매운 시간은 평생 붉은 가뭄이 되었다

햇볕이 빠져나간 자리마다 빠져나가지 못 한 붉은 무늬 속으로 무럭무럭 화석으로 핀 어린 평온은 그 안에서 무궁무진 빛나는 벼랑으로 진화하고 있다



메아리를 기억하다


바람과 바람 사이에는 나무의 굽은 길이 있다
철침은 침목의 내력이 구부러지지 않게 소리의 심지를 잡느라 애를 쓰고
레일은 속력으로 검은 소리들을 탈선하려 한다
창문 너머 세계가 궤도를 알 수 없는 소리의 길이라 절규하며
별들은 서로를 기대주던 어깨 틈새로 스며들지
철커덩덜커덩 철컥

꽃의 모양으로 찢어진 허공에서 간단간당 흔들리는 필체들은
녹슨 지병에 핀 이끼의 피 흘림
그늘이 시든다며 약봉지들은 상자 속에 갇혀
가장 슬픈 계절을 앓는 냄새를 풍기지
편지는 봉인한 채 수신자에게 입구가 없기도 하고
발신자에게 침묵의 소리가 되기도 해
달그락달그락 달크락

서랍 속에서 부패하는 높은 외로움이여
태어나서 마른 채 부서져 내리는 지난해의 꽃잎 향기로
사랑한다고 그대에게 편지를 쓰네
상처를 낫게 하는 비방은 어느 계절에나 있는 법
빨간 스웨터의 여우가 서랍 속의 소리를 열기 시작하는 날
사랑의 미결수가 되어 또 한 궤도를 살아 내려 해
그립다그립다 아주 우리가 크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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