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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긍






사회 정의正義를 위한 투쟁과 유토피아 건설
―『홍길동전洪吉童傳』





지난 해 10월부터 불거진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에서 시작하여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에까지 이르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이 사회를 유지시키는 ‘법’과 ‘정의’가 과연 제대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직면한다. 대통령부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대고 뻔한 증거가 있어도 하지 않았다고 발뺌하는 저 뻔뻔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정유라 친구의 아버지 회사인 ‘KD코퍼레이션’에게 일감을 몰아주도록 현대자동차에 청탁을 하고 이것이 문제되니 기술력은 있는데도 인정받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안타까워 지원을 했다고 한다. 그것도 외국을 수시로 드나들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신 대통령께서 귀한 시간을 내서 직접 경제수석에게 지시했다고 하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수많은 중소기업을 다 제쳐두고 왜 하필 그 회사인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경우다. 꿩이 풀숲에 머리를 쳐 박고 자기만 안 보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보지 못한다고 여긴다. 커다란 몸통을 모두가 보고 있는데도 말이다.
대통령을 비롯해 ‘국정농단’에 관련된 많은 피의자가 발뺌을 하는 게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마도 좋은 변호사를 선임해 법망을 이리저리 피해 가다 보면 무죄가 되리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이럴 때 우리는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영웅’을 기다리게 된다. 누군가 나타나 이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좀 어떻게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법은 믿을 수 없고 민초들은 힘이 없으니 누군가 정의를 실현주길 바라는 것이리라.
오늘날에는 그런 영웅은 영화나 만화에나 존재한다. 배트맨, 슈퍼맨,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등 이른바 ‘마블코믹스Marvel Comics’의 주인공들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중세시대에는 바로 그런 ‘의적’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 과연 중세의 의적들이 이야기나 소설에 보이듯이 그런 일들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의적들은 세계 각처에 존재했고 우리에게도 바로 저 유명한 ‘홍길동’이 있다.

허균이 정말 『홍길동전』을 지었을까
우리 문학사에서 최초의 한글소설이자 사회성이 강한 소설인 『홍길동전洪吉童傳』은 ‘반역죄’로 처형당한 교산蛟山 허균許筠(1569~1618)의 작품이라 한다. 『홍길동전』의 가치는 국문학사에서는 물론이고 중등 『국어』교과서에서도 위력을 발휘해 해방 이후 국어 교과서가 만들어진 뒤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계속 실렸다. 대부분 ‘문학과 사회’ 같은, 현실반영을 따져보는 단원에 들어있어 교과서에서도 그 사회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과연 이 대단한 『홍길동전』을 허균이 지었을까?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 하겠지만,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홍길동전』을 보면 길동이 집을 떠나고자 하여 그 어미에게 “옛날 장충의 아들 길산吉山은 천한 출생이지만 열세 살에 그 어미와 이별하고 운봉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전하였습니다.”고 고하는 대목이 있다. 장길산은 황석영에 의해 소설화된 17세기 숙종 때의 도둑이다. 허균은 광해군 때 사람이니, 죽고 나서 소설 속에 장길산이 등장한 꼴이 된다. 이 사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유일한 기록은 허균보다 15살 아래인 이식李植(1584~1647)의 『택당집澤堂集』에서 찾을 수 있다. 

세상에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수호전水滸傳』을 지은 사람의 집안이 3대 동안 귀머거리가 되어 그 대가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도적들이 바로 그 책을 높이 떠받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허균許筠과 박엽朴燁 등은 그 책을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적장의 별명을 하나씩 차지하고서 서로 그 이름을 부르며 장난을 쳤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허균은 또 『수호전』에 비겨서 『홍길동전』을 짓기까지 하였는데, 그의 무리인 서양갑徐羊甲과 심우영沈友英 등이 소설 속의 행동을 직접 도모하다가 한 마을이 쑥밭으로 변하였고, 허균 자신도 반란으로 처형되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귀머거리보다도 더 심한 응보를 받은 것이라고 하겠다.

앞서 『삼국지연의』를 예로 들어 소설의 허구가 역사적 실상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를 언급한 다음 『수호전』을 예로 들어 도적들이 그 책을 받들었기에 3대에 귀머거리가 되는 벌을 받았다 한다. 도적을 의적으로 그려 이를 미화시킨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실상 『수호전』에 등장하는 ‘양산박의 108호걸’들은 부당한 수탈과 억압에 대항해서 정의를 실천하는 의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홍길동전』이 이런 의적의 형상을 부각시킨 『수호전』을 본받아 지었으니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홍길동이라는 도적을 의적으로 그린 데에 있다. 말하자면 허균이 지었다는 모본母本 『홍길동전』의 본류는 다름 아닌 ‘의적전승’의 소설화인 셈이다.
하지만 허균의 문집은 물론이고 처형당하기 전 문초 받은 기록 어디에도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단서가 없다. 그렇다면 이식의 기록 한 줄을 가지고 과연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여기에 『홍길동전』 작자에 대한 딜레마가 있다.
일단은 『홍길동전』을 짓지 않았다고 하는 확실한 근거가 없기에 문학사 서술에 유리한 방향으로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고 규정할 수밖에는 없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보는 것과는 다르다고 봐야 한다. 이 사태는 허균이 지었다는 『홍길동전』의 모본이 널리 읽히면서 여러 사람의 손에 의해 내용이 첨가되어 18~9세기에 당시 상업출판인 방각본坊刻本으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게다가 허균은 그 기질이 반항적이어서 네 번이나 파직을 당했고, 서울 명문가의 서자들과 같이 ‘칠서七庶의 난’을 일으켰으며, 승군과 무사들을 모아 반역을 꾀했다는 점에서 홍길동과 자못 유사한 면이 있다. 더욱이 「유재론遺才論」이나 「호민론豪民論」등 그의 글이 『홍길동전』의 핵심사상과 일치하기도 한다. 인재를 고루 써야 한다는 「유재론」을 보면 “동서고금에 첩이 낳은 아들이라고 해서 어진 사람을 버리고 어미가 두 번 시집갔다고 해서 그 아들의 재주를 쓰지 않는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만이 천한 어미를 가진 자손이나 두 번 시집 간 자의 자손을 벼슬길에 끼지 못하게 한다.”고 한탄했다. 게다가 “천하에 두려워하는 바는 오직 백성뿐”이라고 하는 「호민론」을 보면 홍길동의 형상과 유사한 ‘호민’을 다음과 같이 그려 주목된다.

자취를 고깃간에 숨기고 남 모르게 딴 마음을 쌓아서, 천지간을 살펴보다가 혹시 그때에 사고라도 있으면 원했던 바를 부리고자 하는 자는 호민豪民이다. 대저 호민은 크게 두렵다. 호민은 나라의 어지러운 틈을 엿보다가 탈 만한 기회를 노려 밭두렁 위에서 팔을 떨치고 한 번 소리지르면 저 원민怨民(원망만 하는 사람)들이 소리만 듣고도 모이며 의논하지 않아도 외치는 것은 같아진다. 항민恒民 (순종하는 사람)들도 또한 살고자 하여 호미와 고무래와 창자루를 가지고 따라가서 무도한 자를 죽이게 된다.

이 글은 광해군 때 지어졌으리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먼저 각성한 혁명가에 의해 혁명이 가능하다고 하는 ‘민중혁명론’과 닮아있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1880~1936)가 ‘의열단義烈團’을 위하여 1923년 지었다고 하는 「조선혁명선언」의 논리와 유사하다. 이렇게 허균의 행적과 사상이 『홍길동전』과 유사하기에 허균이 지었다는 모본은 『홍길동전』의 기본 골격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추측된다. 다만 그 작품의 존재가 발견되야만 『홍길동전』을 둘러싼 모든 의문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홍길동은 실존인물인가
홍길동은 실존인물일까? 아니면 허구의 인물일까? 분명 실존 인물이다. 그는 연산군 때의 도둑으로, 인륜을 어기는 죄를 짓고 가출하여 도둑이 되었으며 산채는 문경 새재에 있었고 당상관의 복색으로 관가에 출현하여 지방 관아를 어지럽혔다 한다. 연산군 6년(1500년) 10월 22일 일기를 보면 영의정 한치형, 좌의정 성준, 우의정 이극균이 “듣건대 강도 홍길동을 잡았다하니 기쁨을 견딜 수 없습니다. 백성을 위하여 해독을 제거하는 일이 이보다 큰 것이 없으니, 청컨대 이 시기에 그 무리들을 다 잡도록 하소서.”하여 연산군과 같이 도둑 홍길동 잡은 것을 축하했다 한다. 게다가 같은 해 12월 29일 일기에는 “(예전에) 강도 홍길동이 옥정자와 홍대 차림으로 첨지라 자칭하며 대낮에 떼를 지어 무기를 가지고 관부에 드나들면서 기탄없는 행동을 자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보면 실존 인물 홍길동의 행적이 『홍길동전』과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허균은 이런 홍길동의 행적에 관심을 갖고 『홍길동전』을 지었을 것이다. 실제로 16세기는 조선사회를 지탱하던 봉건제의 모순이 표면화된 시기로 홍길동뿐만 아니라 임꺽정, 순석 등 군도群盜들의 출현이 빈번했던 ‘민란의 시대’였다. 이 군도들은 “모이면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백성이 된다.聚則盜 散則民”고 왕조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사실은 피폐한 백성들의 무리였다. 가혹한 세금과 수탈에 시달려 농토로부터 도망한 유민流民들의 무리인 것이다. 먹고 살 것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도적이 된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이들의 행위는 단순한 도적질이 아닌 ‘농민저항’의 성격을 갖는다.
『홍길동전』의 역사적 의미도 여기에 있다. 활빈당活貧黨 활동을 통하여 농민저항을 형상화시킨 것이다. 홍길동이 해인사를 털고 나서 “스스로 무리를 활빈당이라 하면서 조선 팔도로 다니며 각읍 수령이 불의로 모은 재물이 있으면 탈취하고, 혹시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이 있으면 구제하되, 백성의 재물은 조금도 침범치 않고 나라의 재산에는 추호도 손을 대지 않았다.”한다. 이른바 ‘의적義賊’인 셈인데, 이들이 바로 중세봉건시대 탐관오리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농민저항세력인 것이다.
이런 중세봉건시대 의적들의 이야기는 많은 나라에 퍼져 있는 데, 중국 『수호전』에 등장하는 ‘양산박’의 108명 도둑들이나, 영국 노텀엄 셔우드 숲속의 ‘로빈후드’, 멕시코의 ‘조로’, 볼가강 카자흐족의 ‘스텐카 라진’ 등이 그 예이다. 하나같이 불의한 재물을 탈취하고 가난한 농민들을 도와주었으며, 탐관오리들을 공격대상으로 삼았다. 그러기에 현행법에 의해서는 범법자로 몰려 도망 다니는 처지지만 백성들로부터는 자신들을 구원할 ‘영웅’으로 대접 받는다.
홍길동의 실제 행적이 의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소설 속에서는 의적으로 형상화 됐다. 하지만 중세봉건시대 의적들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봉건정부나 왕에 대해서 적대적인 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홍길동전』에서도 나라의 재산에는 추호도 손을 대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있으며 나중에는 병조판서의 벼슬도 받는다. 즉 이들의 적은 탐관오리일 뿐이며 어디까지나 왕을 비롯하여 봉건체제를 유지하는 테두리 내에서 투쟁을 전개해 나간다. 말하자면 어진 왕도정치의 실현을 이상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자아실현, 그 멀고도 험난한 길
그러기에 우리는 홍길동에게서 저 체 게바라Che Guevara(1928~1967)와 같은 ‘혁명가’의 이미지를 덧씌우면 안 된다.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은 어디까지나 중세시대의 의적일 뿐이다. 오히려 활빈당 행수로서의 홍길동은 전체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홍길동전』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부분은 가정내에서의 적서차별을, 둘째 부분은 봉건수탈에 대항하는 활빈당 활동을, 셋째 부분은 이상국 건설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세 부분을 아우르는 공통적인 문제의식 혹은 주제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아실현’이다. 즉 서자로 태어나 벼슬을 할 수 없는 한恨이 활빈당 행수로, 병조판서로 나아가게 했으며, 결국 율도왕으로 까지 이어진다.
『홍길동전』을 관통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바로 이 서자로서의 한이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공자·맹자를 본받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병법이라도 익혀 대장인大將印을 허리에 비스듬히 차고 동정서벌東征西伐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이름을 오래도록 빛내는 것이 장부의 통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어찌하여 이 한 몸 적막하여, 부형이 있는데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심장이 터질지라.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서자이기에 벼슬길이 막힌 것을 통탄해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름을 날리고 출세하는 길이 과거 밖에 없었다. 그런데 과거길이 막히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집안에서 홍판서가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허락했지만 사회적 공인을 받은 것은 아니다.
홍길동이 가출을 결행한 것은 자객인 특재와 관상녀를 죽였기 때문이다. 즉 집안에서 불의한 사람들을 살인했기에 범법자가 되어 망명도생亡命圖生을 결행한 것이다. 이제 남은 길은 『수호전』의 영웅들이 그렇듯이 도적이 되는 것이다. 의로운 일을 행하고 범법자가 되어 모여드는 도적굴은 범법자들에게는 일종의 해방구였다. 거기에는 세상의 법률이 미치지 않는 그들만의 규약이 있었다. 백성들을 수탈하는 탐관오리나 불의한 사람들을 징치懲治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의적으로서의 명분이 그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의적들은 어느 정도 세력이 갖춰지면 이런 의적으로서의 명명식을 거행한다. 『홍길동전』에서 그들 집단을 ‘가난한 사람들을 살리는 당’인 ‘활빈당活貧黨’으로 이름 붙이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행동규약을 정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홍길동은 활빈당 행수로서의 역할을 계속 수행해나가지 않고 ‘병조판서’가 되고자 했다. 활빈당 대장으로서 도둑들을 이끌고 봉건정부에 대항했던 위치에서 봉건정부의 병권을 휘두르는 자리인 병조판서가 되길 원한 것이다. 봉건정부가 신출귀몰한 자신을 잡을 수 없자 “길동은 아무리 하여도 잡지 못할 것이오니, 병조판서 벼슬을 내리시면 잡히리이다.”라는 방을 써 붙여 이런 엄청난 제안을 한 것이다.
실상 홍길동은 어린 시절부터 문관이나 무관으로 나가 벼슬 하고자 했고, 서자기에 그 길이 막힌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활빈당 행수의 역할을 했지만 본래 의도한 바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이야기는 『홍길동전』 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의협심이 강한 선비들이 군도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가 다시 자신의 위치로 돌아오는 숱한 ‘군도담群盜談’에서 많이 확인할 수 있다. 홍길동의 바람은 오직 서자의 한을 풀고 벼슬길로 나가 자신의 이름을 빛내는 것이다. 이런 홍길동의 생각은 조선을 떠나며 임금에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신이 전하를 받들어 만세를 모실까 했으나, 제가 천한 종의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문文으로는 홍문관이나 예문관 벼슬길이 막혀 있고, 무武로는 선전관 벼슬길이 막혔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사방을 멋대로 떠돌아다니면서 관청에 폐를 끼치고 조정에 죄를 지었던 것이온데, 이는 전하로 하여금 아시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이처럼 서자로서의 한이 결국 활빈당 행수로 활약하게 했고, 벼슬하고자 하는 소원이 억지로 병조판서까지 제수 받게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홍길동이 너무 개인적인 출세에만 집착한 것이 아니냐 할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요즘처럼 다양하게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길이 펼쳐져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과거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데, 그 길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으니 오죽 하겠는가. 원하는 대학에 가려는데 아예 입학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게다가 수많은 서자들의 한을 대변하고 있으니 홍길동 개인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이제 홍길동이 병조판서가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절대 아니다. 애초 병조판서를 제수한 것도 홍길동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소신의 죄악이 지중하온데, 도리어 은혜를 입사와 평생의 한을 품고 돌아가 전하와 영원히 작별하오니, 부디 만수무강하소서.”라고 직책을 수행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병조판서 제수는 일종의 한풀이이고, 상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지, 그 직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누가 서자이자 도둑대장의 명령을 따르겠는가.
그래서 진정한 자아실현을 위해서 이제 조선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서는 서자라는 신분도 도둑의 대장이었다는 전력도 필요 없는 것이다. 홍길동에게는 ‘율도국聿島國’이 신대륙이나 다름없다. 거기서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한 것이다. 하지만 이상향으로 설정된 율도국은 새로운 정치형태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그저 조선과 다름없는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공간으로 위치한다.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삼년에 산에는 도적이 없고 길에는 떨어진 물건을 주워가지 않으니 태평세계”라 할 뿐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봉건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다. 서자인 홍길동이 왕으로 활약하고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는’ 풍족한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율도국聿島國’이 어디인가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율도국聿島國’은 과연 어디인가? 작품을 보면 “즉시 몸을 솟구쳐 남경으로 향해 가다가 한 곳에 다다르니, 거기는 율도국이었다. 사면을 살펴보니 산천이 깨끗하고 인물이 번성하여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이었다. 남경에 들어가 구경한 뒤에 제도라 하는 섬에 들어가 두루 다니며 산천도 구경하고 인심도 살피면서 다녔는데, 오봉산에 이르러 보니 정말 천하제일 강산이었다. 둘레가 칠백 리오, 기름진 논이 가득하여 살기에 정말 알맞았다.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내 이미 조선을 하직하였으니, 이곳에 와 은거하였다가 대사를 도모하리라.’ 하고” 마음에 두었다 하며, 다른 곳에서는 “남쪽에 율도국이라는 나라가 있으니, 기름진 땅이 수천 리나 되어 실로 물산이 풍족한 나라였다.”고 한다.
중국 남경南京에서 남쪽으로 가다 보면 만나는 섬이 있는데, 대만과 일본 열도 사이에 위치한 오키나와[沖繩]다. 오키나와가 바로 율도국이라 한다. 오키나와의 옛 이름이 류큐[琉球]로 율도국의 발음과 흡사하며, 『홍길동전』에 묘사된 것처럼 지리적으로 남경으로부터 남쪽에 위치한 섬이다.
『홍길동전』을 보면 홍길동은 활빈당 부하들인 마숙, 최철과 함께 율도국을 공격하여 율도국 왕을 항복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 그리고 기존의 율도국 왕과 신하들을 죽이지 않고 제후로 봉했다. 율도국을 30년간 다스리고 나서 태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붕어한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의 「연산군일기」의 기록과는 달리 역사서에서 홍길동이라는 강도는 조선에서 추방당하는데, 그가 간 율도국은 지금의 류큐국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증거로 오키나와 지방에서는 매년마다 ‘홍가와라洪家王’라는 의적을 기리는 행사를 치르고 있다는데, 그 홍가와라가 홍길동과 동일인물이라는 것이다. 홍길동은 류큐국의 도래인渡來人으로 기존 세력을 제압하고 새로운 지도자로 부각된 인물인데, 『홍길동전』의 내용과 일치한다. 홍길동이 살았다고 추정되는 15세기에서 16세기까지만 해도 오키나와에서는 홍씨 성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실제로 류큐국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때 일본의 요구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과의 친선관계를 맺고 있었다. 게다가 오키나와에는 그 홍가와라를 모신 사당이 있으며 추모비까지 세워져 있다고 한다.

홍길동, 그 빛나는 이름
홍길동은 이처럼 자아실현의 험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서자에서 활빈당 행수로, 또 병조판서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율도왕까지 자신을 최고의 지위까지 올려놓았다.
그런데 활빈당 대장이나 병조판서거나 율도왕으로서 홍길동이 아니라, 우리 주변엔 홍길동이 너무 많아 익숙하다. 관공서나 학교에 가보라. 대부분의 공문양식이나 입학서식에 명시된 이름은 모두가 ‘홍길동’이다. 우리사회에서 홍길동은 어느덧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되어 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화인가? 게다가 실제로 구한말 일제의 침탈에 항거하며 무력투쟁을 했던 무장집단의 이름이 ‘활빈당’이다. 역사의 고비마다 혹은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으로, 그 빛나는 이름으로 홍길동은 살아있다. 실제는 화적패의 두령에 불과했을 텐데, 어찌해서 중세를 뛰어넘어 이 현대의 한 복판에서 계속 살아있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우리에게 자유와 정의에 대한 꿈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회라고 하더라도 완벽하게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자유와 정의를 실현하는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의적의 사회사』를 썼던 홉스보움E.J. Hobsbawm은 의적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의적들을 싸고 있는 지방적·사회적 틀을 벗기면 거기에는 무엇인가가 여전히 남아있다. 거기에는 자유, 영웅적 행위, 그리고 정의의 꿈이 존재하는 것이다.






▶권순긍_ 세명대학교 미디어문화학부 교수. 저서 『활자본 고소설의 편폭과 지향』, 『고전소설의 풍자와 미학』,『고전소설의 교육과 매체』, 『고전, 그 새로운 이야기』, 『살아있는 고전문학 교과서』(2011, 공저), 『한국문학과 로컬리티』등. 평론집 『역사와 문학적 진실』. 고전소설 『홍길동전』, 『장화홍련전』, 『배비장전』, 『채봉감별곡』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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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5 제17권(65호-68호) 67호/집중조명/손현숙/절망을 견디는 한 가지 방법 외 4편/시론 편집부 2018.04.06 51
3144 제17권(65호-68호) 67호/집중조명/박완호/사람나무 ─이길래 작가의 ‘인송人松’ 외2편/자선시/시론 편집부 2018.04.06 39
3143 제17권(65호-68호) 67호/특집/내 시의 처음/민왕기/최초의 시 편집부 2018.04.06 50
3142 제17권(65호-68호) 67호/특집/내 시의 처음/신두호/같은 강에 적셔진 발 편집부 2018.04.06 57
3141 제17권(65호-68호) 67호/특집/내 시의 처음/한인준/‘시’라는 것으로 편집부 2018.04.06 58
3140 제17권(65호-68호) 67호/특집/내시의 처음/이진욱/첫 시집 『눈물을 두고 왔다』의 소회 편집부 2018.04.06 53
3139 제17권(65호-68호) 67호/특집/내 시의 처음/안미옥/처음 이후 편집부 2018.04.06 46
3138 제17권(65호-68호) 67호/권두칼럼/장종권/시가 살아 세상이 따뜻해지기를 편집부 2018.04.06 60
3137 제17권(65호-68호) 66호/연재산문/이경림/50일-창 편집부 2017.10.27 403
» 제17권(65호-68호) 66호/고전읽기/권순긍/사회 정의正義를 위한 투쟁과 유토피아 건설 편집부 2017.10.27 369
3135 제17권(65호-68호) 66호/미니서사/김혜정/새 편집부 2017.10.27 448
3134 제17권(65호-68호) 66호/미니서사/박금산/첫 키스를 했다고 치자 편집부 2017.10.27 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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