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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권(65호-68호)
2017.10.27 17:41

66호/미니서사/박금산/첫 키스를 했다고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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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박금산 (소설가)





첫 키스를 했다고 치자



당신이 만약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데 당신이 하고 있는 연애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충동과 열정 사이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이 만약 연애를 안 하고 있는데 연애의 의미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면 당신은 연애에 실패했거나 앞으로 연애란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 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밥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배가 고픈 사람은 배를 채우려 하기 때문에 의미에 무관심한데 당신이 만약 배가 찬다는 것의 의미를 찾고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이미 배가 부른 사람이거나 음식에서 맛을 못 느낀 사람이거나 식욕이 없어져서 인생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인생을 무심히 바라보는 사람은 삶과 함께 반드시 죽음을 연결하여 생각할 가능성이 농후한데 소식으로 최소한의 에너지를 보충하며 수행하는 승려들을 떠올린다면 밥이 인생의 의미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일에 지친 사람은 휴식을 찾으려 한다. 무료할 정도의 휴식을 취하고 나면 사람은 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를 가지면서 여행을 떠올릴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여행을 계획하거나 갈망하는 것 대신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여행에 대한 의미를 찾으려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여행에 지치지도 않았으면서, 여행의 의미부터 먼저 따지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여행 자체가 아니라 여행을 통해 얻을 부수적인 이익을 계산하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고 치자. 두 사람은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라고 치자.
두 사람은 중학교 일학년 때 처음으로 키스를 했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다가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문득 키스를 하기로 합의했다. 키스만 하기로 했는데 남자는 입술을 맞대면서 손을 여자의 가슴에 얹었다. 여자는 남자를 밀어내면서 거세게 뺨을 때렸다. 이런 행위가 데이트 폭력, 데이트를 빙자한 성추행의 범주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질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어쨌든 얘기를 진행해 보기로 하자.
여자가 뺨을 때려놓고 울었다고 치자. 남자가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치자. 여자가 울었기에 남자는 여자에게 무의식적으로 사과했을 것이다. 눈물은 고통의 결과이니까 말이다. 여자가 고통을 받았다면 여자를 고통스럽게 만든 사람은 남자였다. 여자가 말했다. “나중에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한테 처음으로 만져보라고 허락하려 했단 말이야! 네가 그 사람이야? 네가 그 사람도 아니면서 왜 내 가슴을 만져? 넌 우리가 평생 갈 거라고 생각해?” 여자가 흑흑 울었다.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며 씁쓸함을 느꼈다고 치자. 나중에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허락하려고 했다는 여자의 말은 남자가 듣기에 자신은 여자의 안중에 없다는 뜻이었다. 여자는 나중의 문제라고 말했으나 남자는 지금 당장의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자존심이 심하게 상했다. 그래서 따지고 싶었다. ‘키스를 허락했던 것은 그럼 뭐니? 사랑해서 그런 거 아니었어? 키스는 사랑 아니야?’ 하지만 남자는 묻지 못했다. 여자가 울었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무릎을 꿇고 빌었다고 치자. 이렇게 말했다고 치자. “용서해 줘. 내가 죽을 때까지 널 사랑할게.” 이 말을 듣고 여자가 웃었다고 치자. 여자가 남자의 말을 믿었을까? 죽을 때까지라는 말을? 여자의 마음은 그렇다 치고, 남자의 마음에 여자를 패로디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고 치자. 남자는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나 역시도 나중에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과 진짜로 멋있게 키스를 하려고 지금 키스를 한 것 아니었던가? 영화 같은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손동작을 배워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저절로 손이 갔는데 그걸 어쩌란 말인가.’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꺼내 보일 수가 없었다. 남자는 그런 마음을 가리기 위해 ‘평생’을 엉겁결에 걸고 말았다.
여자가 계속 웃었다고 치자. 눈물을 닦으면서 웃었다고 치자. 어처구니없어서 웃었다고 치자. 남자가 진정으로 여자를 죽을 때까지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치자. 남자에게 여자의 가슴으로 옮겨간 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 사람이 어찌어찌 해서 결혼을 한 후 아이를 낳았다고 치자. 아이가 자라서 중학교 일학년이 되었다고 치자. 아이가 여자와 남자에게 “엄마 아빠는 왜 결혼했어?”라고 묻는다고 치자. 남자와 여자는 무엇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인가. 여자가 아이에게 “네 아빠가 죽을 때까지 나를 사랑한다고 했어.”라고 대답하면서 웃는다고 치자. 남자에게 첫 키스는 무엇이었는가. 남자와 여자는 사이가 좋은 부부인데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남자가 여자에게 “내가 내 손모가지를 댕겅 잘라버릴 수도 없고…….” 하고 말한다고 치자.

첫 키스를 한 이후에 결혼을 한 것으로 정리해 보았는데 결혼은 첫 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우리는 위의 남자의 사례에서 이런 것을 배울 수 있다. 남자는 손의 움직임을 의미화 하느라 결혼에 이르렀다. 충동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노라 다짐했다. 충동에 의미가 부여되면 그것은 책임으로 진화한다. 책임은 사랑으로 발전한다. 사랑 이후를 우리는 열정이라고 부른다. 다른 건 모르겠다. 여자가 사과를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평생이라는 말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평생이라는 말에서 배울 것이 또 있다. 진정한 사과란 전부를 걸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부를 걸어야 용서가 용이해진다.







▶박금산_ 소설가. 여수 출생. 《문예중앙》으로 등단.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집 『생일선물』, 『바디페인팅』,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장편소설 『아일랜드 식탁』, 『존재인 척 아닌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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