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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권(65호-68호)
2017.10.26 19:13

66호/책 크리팃/안성덕/소통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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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크리팃



안성덕 (시인)




‘소통’의 방식
-정미소 시집 『벼락의 꼬리』, 이상아 시집 『거룩한 밥상』



  세상이 피어난다. 봄이다. 봄이 숨기고 있던 것들을 토해낸다. 빨강, 노랑, 분홍, 하양…, 겨우내 머금고 있던 것들을 죄다 피워낸다. 꽃이 없는 것들, 이미 색을 다 써버린 것들은 잎을 피워낸다.
  말이 물관을 타고 올라 ‘꽃’을 피우고 ‘잎’을 피운다. 꽃을, 잎을 피워낸다는 것은 세상과의 관계 맺기다. 세계와의 통섭이다. 저 겨울의 빈가지에서 각기 다른 꽃과 잎을 피워내는 것, 세상 만물이 각각의 자아를 감추고 있다는 방증일 터다. 각기 다른 자아들은 서로 섞이고 소통함으로써 바깥세상과의 조화를 이룬다. 피어난 꽃이, 잎이 바람 앞에 말을 풀어 놓는다. 너를 내 안에 들이고 또 나를 너에게로 흘러 보낸다. 하늘과 저 어둔 땅속이 소통을 한다.  
  정미소 시인의 『벼락의 꼬리』와 이상아 시인의 『거룩한 밥상』은 세상과의 소통이다. 두 시인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독이고 웅크렸던 자아를 바깥세상으로 내보낸다. 더 넓은 세계를 안으로 끌어들여 섞이고 통한다. 용서하고 화해한다. 그것은 어느 일방의 용서와 화해가 아니라 섞이고 섞는 주체들의 상호 관계 맺기다. 이미 익숙했으나 낯선 것들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다.
너를 통해 답답했던 내가 열린다. 나의 부름에 어둡기만 했던 네가 한 발짝 다가선다. 너와 내가 서로 먼 데를 보고 있는 세상의 귓속에 한줄기 봄바람을 불어넣는다. 세상이 피어난다. 통한다.


1. 듣기와 말하기 그리고 말 섞기: 정미소 『벼락의 꼬리』
  나 여기 있소. 귀먹고 입 닫힌 나도 예 있소, 라고 가만히 말 건네는 아니 소리 없이 웅변하는 외롭고 고단한 속울음이다. 말할 수 없어 왜소하고 입 있으나 말 없었던 것들의 바깥과의 소통은 첫 번째, 세상이 내게 걸어오는 ‘말 들어주기 혹은 알아차리기’. 두 번째, 다독이고 눌러두기만 했던, 어쩔 수 없어 입술 꼭 깨물었던 내 안의 ‘속말 토해내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과 주고받기, 섞고 섞이기’의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해질녘, 2층 방 창문을 두드리는 먹감나무의 두툼한 입술에 귀 기울인다 말하고 싶어 내 창을 기웃거리는 안색이 붉은 나뭇잎, 달싹거리는 잎을 따라 줄기와 몸통에 고인 말들의 문이 문을 두드린다 바람이 불 때마다 아랫입술을 도르르 말았다가 펴는 입, 말매미의 울음과 고추잠자리 쉬어간 자국마다 실주름이 진다 빈 감꼭지가 풋풋한 여름으로 차오르는 소리를 듣는다 천둥과 장맛비와 긴 가뭄이 가두었던 먹감나무의 깊은 그늘이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오고 있다 나무의 입이 무거운 속내를 열고 있다.


                                                                                                                          ― 「나뭇잎은 나무의 입이다」 전문


바닥의 바닥을 또각거리며 몸을 옥죄는 세상의 뒷골목 군소리 없이 버틴 하이힐의 저 안쪽 비좁은 숨 막힘이 박리증에 시달린다 울분이 고여 제풀에 사색이 된 엄지발톱 입과 귀를 닫은 채 안으로 안으로 파고든다 피붙이의 허물을 덮으려고 안간힘 쓴 그의 등에서 초승달이 웃는다 각질 더미에서 더는 버틸 수없는 그의 속 소리를 끌어안는다.


                                                                                                                                  ― 「초승달에 반하다」 부분


온종일 전전긍긍한 감나무가 “해질녘”에서야 겨우 “2층 방 창문을 두드”린다. 할 말을 토해내지 못해 “안색이 붉은 나뭇잎”의 “달싹거리는 잎”에서 “몸통에 고인 말들”이 무어라 전해진다. “몸통에 고인 말들”을 따라 읽다가 이윽고 “말매미의 울음과 고추잠자리 쉬어간 자국마다 실주름이” 지는 걸 본다. 바람이 나뭇잎의 입을 여는 게 아니라, 나뭇잎이 입을 달싹거려 해질녘 바람이 인다는 것을 안다. “빈 감꼭지가 풋풋한 여름으로 차오르는 소리를 듣”고 “천둥과 장맛비와 긴 가뭄이 가두었던 먹감나무의 깊은 그늘이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린 내가 세상 만물의 곡절 있음을 안다.
사금파리 같은 “세상의 뒷골목을 군소리 없이 버틴”, “제풀에 사색이 된 엄지발톱”을 “파고든” 초승달의 날카로움조차 웃음으로 말을 건네 온다. “살아도 살아도 사막인 타국에서 우우, 노래하는 사람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노래하는 사람」) 세상이 웅얼거리는 소리를 듣는 귀가 밝다.

지하철 환승역 광고 카피, 당신의 묘비명은 무엇입니까?
 
이리저리 떠밀리며 레일과 레일을 갈아가며 타인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 굵기가 서로 다른 퍼머 롯트로 웨이브를 만다 샴푸실에서 번개반점 우동을 스트레이트퍼머 웨이브로 구겨 넣는 삶

어제와 오늘의 컷이 만성 하지정맥에 시달릴 때 역사로 들어서는 희망행 지하철

묘비명에 골몰한다 독한 퍼머액에 중화된 손금이 우직하다 코팅제로 희미해진 지문이 꽃으로 피어 웃는다

묘비명을 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행 지하철을 기다린다.
                                                               ― 「비명碑銘」 전문


한 쪽 팔이 잘려나간
등이 구부정하게 휜 풍상이 둥지를 안았다
대설 한파가 뿌리째 흔들어도 묵상 중인,

느티나무 고목에게 말 건다 ‘마더나무’라 부를게요.
                                                   

                                                                ― 「고목에게 말 걸다」 부분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라던가? 우리는 매일 비명悲鳴을 지르며 지하철을 타고 일터로 간다. 일상은 우물쭈물할 시간조차 없는 것이다. 우물쭈물할 틈조차 없는 화자에게 어느 날 지하철 광고가 눈에 박힌다. “당신의 묘비명은 무엇입니까?” 비명을 강요하는 세상을 향해, 그의 “독한 퍼머액에 중화된 손금”에서 “우직하”지만 “코팅제로 희미해진 지문이 꽃”처럼 피어난다. 오늘이 아무리 신산하고 순간순간 비명이 튀어나와도 우리는 견딜 수밖에 없다고 세상에 말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를 잘 했노라 묘비명에 적겠다고, 화자는 다짐처럼 세상에 말을 건넨다. “한 쪽 팔이 잘려나”가고 “등이 구부정하게 휜 풍상”의 세월을 살지라도 “묵상 중인,/ 저 느티나무 고목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봐야겠노라 다짐을 한다. “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느티나무야.”(「느티나무에게」) 속말을 가만 꺼내놓는다.

어머니는 저의 단풍물 들인 고슴도치 헤어스타일의 숏커트가 마음에 안 드신대요 새로 산 핫팬츠를 속옷이냐고 물어요 비도 안 오는데 웬 장화냐고요 요샌 여름에도 부츠 신잖아요 벗어둔 부츠 속에서 생쥐가 놀면 어때요 찍찍, 발가락을 꼼지락 뒷꿈치를 들썩이며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어요 밥상머리에서 어머니의 불벼락이 떨어졌어요 저도 벼락의 꼬리를 잡았어요 제가 생신선물로 사드린 스웨터가 싸구려는 아닌지 돋보기로 상표를 훑어보셨잖아요 제 남자친구의 콧구멍이 크다고 낭비벽 험담을 하셨지요 어머니 닮은 얇은 입술이 싫어 수술한 건데 돈이 썩어서 굼벵이 이불이 되다니요 저도 어머니가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에요.


                                                                                             ― 「벼락의 꼬리를 잡다」전문


몽당연필로 까막눈에게 개안 수술을 한다 비밀로 하는 둘만의 과외비는 얼음 동동 띄운 콩국수, 노각무침, 열무비빔밥이다 깍두기공책에 또박또박 눌러 쓴 나비, 나비가 부화하여 날아간 곳은 샛노란 무장다리 카톡방이다

봄은 멀지만 이모를 초대한다 ‘알토란 손자와 웃음꽃 피우세요.’ 뭉툭해진 연필심 끝에 까막눈 조리개가 새소리를 연다. 카톡, 카톡! 


                                                                                             ― 「문자 이모」부분


  세상과 담을 쌓고 들어앉은 걸까? 어쩔 수없는 세대차이로 도무지 불통인 어머니. 헤어스타일과 옷차림도 간섭이다. 사사건건 벼락을 친다. 일방적이다. 막힌 씽크대 배수구야 ‘뚫어 뻥’으로 해결하겠지만, 이 불통을 뚫는 일은 어머니를 이해시키거나 내가 스스로 불통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겠다. 사사건건 잔소리인 어머니께 “벼락의 꼬리”를 잡듯 “밥상머리에서” 말대꾸를 한다. 말을 섞는다. “제가 생신선물로 사드린 스웨터가 싸구려는 아닌지 돋보기로 상표를 훑어보셨잖아요…… 어머니 닮은 얇은 입술이 싫어 수술한 건데 돈이 썩어서 굼벵이 이불이 되다니요 저도 어머니가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에요.” 적극적으로 소통을 시도한다. “고사리, 참나물, 떡취, 곤드레, 각시원추리/ 집나온 이방인들이 빙 둘러 앉아 주둥이를 비비”(「곰배령」)며 불통을 섞고 섞는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문자 이모’에게 “몽당연필로 까막눈” “개안 수술을” 해드린다. “카톡, 카톡!” 세상과 소통을 한다.

  심연의 깊은 우물에서 한 두레박 맑고 투명한 물을 길어 올리는 정미소 시인의 ‘소통’의 방식이 부럽다. ‘벼락’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그 ‘꼬리’를 붙들고 세상과의 소통을, 나와의 화해를 시도하는 시인이 먹감나무, 느티나무, 산수유나무, 왕벚나무, 오동나무, 전나무, 상수리  나무 등을 호명한다. 마음 비워낸 자리에 한 그루 나무를 심고 쉬었다 가는 새들의 말을, 잎이 전하는 말을 모으는 시인의 오후가 넉넉해서 좋기만 하다.  


2. 사이 메꾸기와 파고들기 그리고 포용 : 이상아 『거룩한 밥상』
  황사 때문일까, 세상이 온통 뿌옇다. “도수 맞지 않는 안경”을 쓴 듯 “세상은 항상 연무”다. 봄, 세상이 희뿌연 건 어쩌면 온통 꽃밭인 세상에 눈멀어서 일지도 모른다. 급하게 먹은 나이에, 급히 둘러보는 세상에 체해 가슴 답답한 것인지 모르겠다. 체하면 어머니는 손가락을 훑어 내리고, “반짓고리 열고, 바늘 하나 꺼내” 손가락을 따 주셨다. 답답하던 가슴이 금세 뻥 뚫렸었다. 통한 것이다.
서로 통한다는 것은 한마디의 말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쩌면 천 마디의 말보다 단 한 번의 포옹으로, 스며들기로 십년 체증이 뚫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상아 시인이 따주는 “손가락, 이내 피 검다.”(이상 시인의 말 중에서) 검은 피가 솟고 막힌 곳이 뻥 뚫린다. 시인은 소통의 방식을 ‘사이 메꾸기’와 ‘파고들기’ 그리고 ‘포용하기’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나무가 걸어간다.

한세상 살았던 몸을 나와 울을 지나쳐
자주 싸우면서도 가까이 사는 나무에게로
조금 떨어져 사는 덕에 싸울 필요 없는 나무에게로
멀리 살아 늘 그리운 나무에게로

빈손으로 자신을 갈아엎는 힘.
생색내거나 거드름 피우지 않고 조용히 행하여지는
저 고요,의 내밀한 소용돌이.
                                                ― 「보步-나무가 걸어간다」 부분


턱 앞에 들이미는 걸걸한 목소리,
잔뜩 풋내 나는 길.
못 본 척 못 들은 척 그냥 지나칠라 치면
밟힌 얼굴 목소리 짓이겨지면서
물큰 푸른 내 번져오거나
사내아이 오줌같이 비릿한 내 풍기며
얼굴에 옷에 튀어 낭패 볼 것만 같은
생生 내,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은 사람내
지천에 널려있어 따사로운
길 끝이며 시작인 그 길,
생것이며 사람 모두 한 꺼풀 벗은 길.
나도 벗는 벗기는, 그 길.
                                                      ― 「개開-후포에서」 부분

살다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모습이 굳어지게 된다. 백이면 백 모두 몸피가 다르고 속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차별화 되지 않으면 뭉뚱그려지는 현실의 벽이 우리 앞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 앞에 나를 내세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따로따로’, 불통의 늪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나무가 걸어간다.” “빈손으로 자신을 갈아엎”고 “한세상 살았던 몸을 나와 울을 지나쳐/ 자주 싸우면서도 가까이 사는 나무에게로/ 조금 떨어져 사는 덕에 싸울 필요 없는 나무에게로/ 멀리 살아 늘 그리운” “나무에게로 들어간다.” 들어가 사이를 메꾼다. 떨어져 있으면 통할 수 없는 법, 소통을 위해 나무가 그렇듯 우리는 “늘 그리운” 사람에게로 다가서야 한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그냥 지나”치지 않고 “생것이며 사람 모두 한 꺼풀 벗은 길./ 나도 벗는 벗기는, 그 길” 나서야 한다. “몇 걸음 내딛다가 주저앉고야 마는/ 세월, 한도서서/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는 채 가다서다 반복”(「반蹣-세월, 한도서다」-思父曲 · 6) 하더라도 사이를 메꿔야 한다.

어느 틈에 물이 쓰고
물과 뭍 사이 내력을 드러내는
존재의 텅 빔과 가득 차 있음

뻘은 어디나 사선이다
삶과 죽음 사이
기우뚱한 균형을 유지하고서
지구의 공전과 자전 따라 도는
부드러운 곡선이다
                                                ― 「화畵-강화도, 뻘의 노래」 부분


바람에 들판 냄새 실려 온다.
발효되는 의미.
다함께 더불어 어우러지는,
향기.

흐름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보이지 않는
간격;
이미와 아직 사이.
돋을새김무늬 같은 공기.
                                                    ― 「문文-현상을 새기다」 부분

썰물이 되어야 비로소 “물과 뭍 사이 내력”이 드러난다. 아무렇지도 않은성싶던 세상 불통의 속내가 드러난다. 가득 차있던 것이 실은 텅 비어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드릴 것만 같은 뻘도 각이 크고 모서리가 많은 것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지구의 공전과 자전 따라” 순응하며 우리는 짱뚱어가 뻘 속으로 파고들 듯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파고들어 소통해야 한다. 봄의 “향기”가 바람과 들판이 서로의 품속을 파고들어 어우러지는 일이듯, 우리는 각을 죽이고 모서리를 갈아 서로 파고들어야 한다. 스며들어 “발효되”고 “다함께 더불어 어우러”져야 한다. 개흙에 바닷물이 스며 뻘이 되듯, 뻘이 맨발을 빨아들이듯 견고한 현실의 벽 앞에 타자화 된 우리 스미고 파고들어 “보이지 않는/ 간격;” 없이 통할 일이다. 

원색을 경계하며 색을 섞는다

원색
도발적이고 강렬한 유혹이면서
무엇보다 쉽게 질리는 이유는
무늬를 읽거나 물감을 고를 때마다
색이 지닌 강렬함이
사춘기처럼 지난 어느 시절의 치기이거나
다듬어지다 만 모남인 것을 보았기 때문
                                                 ― 「할割-물감을 섞으며」 부분

마늘을 빻는다
뭉그러지며 으스러지는 시간의 뿌리
마늘,
마늘, 이라고 소리 내어 말해본다
불투명한 껍질을 벗겨내고
그 안의 투명한 비늘을 긁을 때
덩어리를 허물고 들어선 길들이
알싸하게 익으며 젖는 것이 보인다
                                                ― 「쇄碎-찌개를 위하여」 부분

봄, 세상이 온통 꽃밭이다. 울긋불긋 형형색색이다. “강렬”한 자신을 녹여 서로 포용했기 때문에 “다듬어지다 만” “사춘기처럼”의 “치기”나 “모남”이라곤 없는 풍광이다. 꽃들이 나무들이, 팔레트 위에서 섞이는 물감처럼 저만을 고집하지 않아 비로소 온전한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찌개의 감칠맛을 살리는 마늘도 통째로 넣으면 음식의 맛을 충분히 살릴 수 없다. “껍질을 벗겨내”고 칼 손잡이로 콩콩 “마늘을 빻”아 넣어야 “알싸한” 냄새와 맛을 더 한다. 역설적이게도 “으깨지며 부드러워”져야 제 각각 본래의 빛깔과 향을 더 하는 법이다. “산을 품은 길이 누워있다./ 길을 품고 문이 나 있다./ 문을 품고 누가 서 있다.” (「붕棚-내가 살았던 집」) 이렇듯 서로 안기고 품어야 풍경이 완성되는 법이다. 용광로에 풀무질을 한다. 열뜬 나와 너를 녹여 진정한 포용을 한다.   

밤새 내린 봄비 덕분에 하늘이 청명하다. 실로 오랜만에 눈이 맑다. 색색 봄꽃들이 모두 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동안 황사에 가려 제 빛을 잃었던 꽃들, 꽃이 색을 잃은 게 아니라 내 눈이 멀어 꽃과 소통을 못한 것임을 알겠다. 개울가 버드나무에도 점점 초록이 번진다. 비오리의 몸짓도 제법 재바르다. 이상아 시인의 시의 손가락이 눈을 찌른다. 눈물로 눈을 씻는다. 다시 본다, 세상 아니 나.




▶안성덕_ 2009년<전북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몸붓』. 원광대학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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