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문화예술소통연구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로그인 회원가입 닫기
제16권(61호~64호)
2017.01.05 00:34

64호/미니서사/김혜정/아무 것도 아닌 낙원

조회 수 58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미니서사

김혜정





아무 것도 아닌 낙원




“여기 참 아름답지. 저길 봐.”
소녀의 손이 머리 위를 가리켰다. 나무들은 하나같이 잿빛 구름을 머리에 인 채 검게 변해갔다. 뾰족한 이파리들도 바싹바싹 타들어가서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아래쪽도 사정은 비슷했다. 땅거죽의 갈라진 틈새를 따라 잡초들만 메마른 얼굴을 삐죽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개소리.”
   소녀의 눈을 보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휑했다. 그저 까만 구멍에 불과한 눈이라니.
  “네 눈은 왜 그렇게 됐지? 어쩌다가 그 지경이 된 거야?”
  “엊그제 까마귀가 내 눈을 파먹었어.”
   제기랄! 나는 너무 놀라서 소리도 내뱉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빨리 여길 떠날 준비해.”
  “여긴 한번 오면 다른 데로 갈 수 없어.”
  “그건 또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야?”
   나는 어떻게 여기를 빠져나갈지에 대해 골몰했다. 사방에 전선을 깔아놓고 응답이 심장으로 와주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사흘 낮밤이 지났다.
   우리는 점점 스러져갈 뿐이었다. 그것만이 사실이고 진실이었다.
  “깜깜해.”
  “밤이니까.”
  “별이 안 보여.”
  “별은 네 마음속에 있는 거야.”
  “배고파.”
  “네 뱃속에 지렁이가 들어 있어서 그래.”
  “지렁이가 새끼를 몇 마리나 낳을까?”
  “다섯 마리. 아니다, 열 마리. 많이 낳아야 배가 부를 테니까.”
  “개소리!”
  “이제 그만 자.”
  “잠이 안 와.”
  “집에 가야지. 엄마가 기다릴 거야.”
  “집에? 정말 갈 수 있을까?”
  “꿈을 꾸면 돼.”
  “네가 있으니까 든든해. 무섭지도 않고.”
  “나도 그래. 빨리 자.”
  “너는 안 자?”
  “너 잠드는 거 보고.”


      머나먼 길을 떠날 채비를 마친 듯 소녀의 숨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소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닿아 있기를 바랐다. 이를 테면, 불이 환하게 켜진 방 안이거나 혹은 이제 막 구워낸 빵이 있는 식탁 앞, 혹은 보드게임을 하는 놀이터라거나 그런 곳에 말이다.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가위 바위 보를 하고 있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이 악몽에서 깨어나기를!








**약력: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

『바람의 집』, 『수상한 이웃』. 장편소설 『달의 문門』, 『독립명랑소녀』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청소년 저작상, 송순문학상 수상.


List of Articles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사항 이 내용물의 저작권은 리토피아와 필자들에게 있습니다 백탄 2004.04.05 46957
3041 제16권(61호~64호) 64호/단편소설/장시진/상실에 대하여 편집부 2017.01.05 713
» 제16권(61호~64호) 64호/미니서사/김혜정/아무 것도 아닌 낙원 편집부 2017.01.05 589
3039 제16권(61호~64호) 64호/미니서사/박금산/어떤 개의 쓸모 편집부 2017.01.05 497
3038 제16권(61호~64호) 64호/기행산문/유시연/기타큐슈의 일본인 편집부 2017.01.04 549
3037 제16권(61호~64호) 64호/고전 읽기/권순긍/"누가 우리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줄까?” 편집부 2017.01.04 551
3036 제16권(61호~64호) 64호/책 크리틱/전해수/‘시간’속으로 편집부 2017.01.04 308
3035 제16권(61호~64호) 64호/책 크리틱/백인덕/시적 ‘개성화’를 위해 기억을 ‘재편再編’하는 두 가지 방식 편집부 2017.01.04 310
3034 제16권(61호~64호) 64호/책 크리틱/김동현/종횡무진의 ‘식도락’, 삶을 노래하다 편집부 2017.01.04 283
3033 제16권(61호~64호) 64호/고창수의 영역시/허문태/소문 편집부 2017.01.04 297
3032 제16권(61호~64호) 64호/고창수의 영역시/신병은/아침의 귀가 편집부 2017.01.04 312
3031 제16권(61호~64호) 64호/고창수의 영역시/박서혜/폭염 편집부 2017.01.04 308
3030 제16권(61호~64호) 64호/신인상/시부문/김숙경/엄나무 외 4편 편집부 2017.01.04 325
3029 제16권(61호~64호) 64호/신작시/김건화/술래가 된지 너무 오래 되었다 외 1편 편집부 2017.01.04 292
3028 제16권(61호~64호) 64호/신작시/임헤라/엉겅퀴 넝쿨 외 1편 편집부 2017.01.04 313
3027 제16권(61호~64호) 64호/신작시/김용균/밴댕이 소갈머리 외 1편 편집부 2017.01.04 297
3026 제16권(61호~64호) 64호/신작시/최지인/순수한 마음 외 1편 편집부 2017.01.04 302
3025 제16권(61호~64호) 64호/신작시/김서하/유보의 무렵 외 1편 편집부 2017.01.04 277
3024 제16권(61호~64호) 64호/신작시/강윤미/오늘의 경험 외 1편 편집부 2017.01.04 276
3023 제16권(61호~64호) 64호/신작시/하기정/구멍 외 1편 편집부 2017.01.04 289
3022 제16권(61호~64호) 64호/신작시/김기화/행주 외 1편 편집부 2017.01.04 33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53 Next
/ 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