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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권(61호~64호)
2017.01.04 22:55

64호/기행산문/유시연/기타큐슈의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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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산문

유시연




기타큐슈의 일본인




―다카마루 씨, 덕분에 잘 왔습니다. 한국은 봄날씨예요.
―와이파이가 없어서 답장이 늦었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꼭 놀러 갈 거니까 그때는 같이 순두부찌개를 먹어요.
―기꺼이……그러지요.

    일본에서 만난 일본인 다카마루상. 그는 기타큐슈 시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인천시에 2년 간 파견 나온 인연으로 그날 우리를 마중 나왔다. 후쿠오카 공항에 내리자 대련에서 기타큐슈로 파견 나온 공무원 강과 시청공무원 하야시 그리고 다카마루가 마중 나와 주었다. 北九州市制50주년기념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자매결연 도시에서 온 손님들을 맞으러 나온 그들과의 첫 만남은 소박하고 편안한 느낌이 강했는데 아마도 비슷한 구조의 생김새 때문이었으리라.
    이번 일본 여행은 우연히 이루어졌다. 그간 몇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선뜻 떠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건 가깝고도 먼 나라 이웃과의 미묘한 감정이 앞섰던 것이다. 인천시와 자매결연 도시인 기타큐슈시. 마라톤 행사에 초대받은 일행 중에 결원이 생긴 것이다. 나 외에도 외부인은 철인 3종 경기를 하는 사십대 여성과 은행원이 끼어 있었다.
점심 때가 지나 있었다. 하야시와 다카마루상의 안내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시모노세키항이 있는 가라토 시장이다. 정어리와 참치, 새우, 장어, 연어살을 발라 두툼하게 얹은 초밥은 한 조각에 천 원에서 천오백 원으로 접시를 들고 마음에 드는 가격의 스시를 골라 담아 계산을 한 뒤 시장 귀퉁이 아무 곳에 앉거나 서서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오후 3시까지 열리는 먹거리 장터는 접시와 젓가락을 들고 불빛이 현란한 가게들을 기웃거리는 사람들과 떨이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해협 저 멀리 기타큐슈와 시모노세키를 가로지르는 철다리가 백여 년 전 조선통신사들이 오간 바닷길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일행들이 해안 데크에 나와 해협을 바라보며 스시를 먹고 있는 사이 비가 오락가락했다.
   조선통신사들이 배로 상륙한 장소에는 홍매화가 피어 빗속에 떨고 있고 바람이 차가웠다. 먹구름이 낀 하늘은 우중충했고 날씨는 음산했다.
그날 밤 고쿠라 리가 로얄호텔에서 시장 주최의 만찬이 열렸다. 우리는 초대 손님으로 만찬장에 일찌감치 도착했다. 강당에는 초대받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시장과 도지사와 시의회의장이 차례로 무대 인사를 한 후 한국 대표로 천마회 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초대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사이 대련에서 파견 나온 강과 다카마루상이 김밥과 조각 케잌을 접시에 날라왔다. 와인과 맥주와 사케 잔을 쟁반에 담아 나르는 호텔 직원들이 둥근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녔다. 샐러드와 오리구이 조각과 크림 스파게티를 접시에 담아 먹는 동안 좀 더 높은 위치에 있는 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공무원이 다가와 몇 번이고 웃는 낯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만찬장에서 돌아와 숙소에 들었으나 싱글룸은 몹시 추웠다. 이틀밤을 추위에 떨었더니 만성기침이 다시 도져 몹시 고생을 하며 삼박사일 여정 내내 진통제를 먹으며 돌아다녔다. 
   혼자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일행은 모두 마라톤 풀코스를 뛰러 출발했고 이번 일정에 빠진 사람의 배번을 가방에 넣고 기차를 탔다. 세 정거장 째 내려 지도를 들고 고궁을 찾아 나섰다. 한자 문화권의 이로움은 이래서 좋은 것인가. 표지판과 도로 바닥에 쓰인 한자만으로도 길을 잃지 않을 정도로 안내표시가 되어 있었다. 고쿠라성城을 향해 걷다보니 저 멀리 앞에서 아는 얼굴이 다가온다.
“다카마루 씨, 안녕하세요?”
“어딜 가는 겁니까?”
“고성에 가는데 안내 좀 해주실래요?”
그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그간 의도적으로 일본을 외면하며 더 먼 나라를 다녔으나 나이 탓인가. 이번에는 일본을 가깝게 만나 볼 기회를 회피하지 않았다. 오래 전 우리가 민족문화와 정신의 우월성을 내세워 일본을 우습게 알고 한 수 아래로 보다가 겪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는 조선의 백성과 정치권에 큰 상처를 입혔다. 한반도를 통해 중국과 그 주변국 문화를 받아들였던 일본은 조선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원했고 우리 사신단이 가면 예를 갖춰 후하게 대접하던 전통이 있었다. 일본과 조선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건 두 번의 전쟁과 그 이후 선진문물과 산업화를 일찌감치 받아들인 일본과의 격차가 벌어지면서였다.
    다카마루상이 매점에서 기다리는 동안 입장료를 내고 혼자 고궁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사층인가 오층을 올라가 다시 내려오기까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흰색 벽과 검은 기와로 이루어진 목조건축 양식은 독일에서 본 백조의 성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하다보니 색깔에 있음을 알았다. 백조의 성 역시 흰색과 어두운 계열의 색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본성의 특징은 담장을 둘러싸고 해자를 만든다는 점이다. 적의 침입으로부터 성을 보호하기 위한 이러한 건축양식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이나 경주의 안압지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들 수 있다.
   성 내부는 작은 박물관이다. 기와나 토기 발굴 사진, 녹슨 칼과 투구, 가면극이 걸린 공연장…… 혼자 녹차를 마시고 기다리던 다카마루상과 시장에 들러 우동을 먹고 국제회의장 쪽으로 걸었다. 시장을 가로지르다가 생녹차잎을 볶아 차를 끓이는 오래된 가게를 만났다. 서비스로 작은 종이컵에 담아주는 차를 마시니 생찻잎의 비린내가 진하게 났다. 백 그램에 7천8백 원을 주고 볶은 차를 샀다.
   후미진 시장 안 선술집에는 한 잔에 이삼백 원이면 마실 수 있는 맥주가 있고 싼 안줏감이 있었다. 대낮인데도 중년 남자 손님들이 더러 있었고 시간이 없어 얼른 다시 나와 걷다가 허름한 술집에서 늙은 남자들이 모여 술을 마시며 엔카를 부르는 장면이 내 발길을 붙잡았다. 유리문 안으로 들여다보니 양복을 입은 노인들이 기다란 테이블 주위에 앉거나 서 있고 마이크를 잡은 노인이 부르는 엔카 목소리가 구슬퍼서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한참 서 있었다. 완주 사진을 찍어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잊은 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 트로트 가락과 비슷하게 들린 엔카의 음률은 알 수 없는 쓸쓸함과 외로움의 감정을 자극했다. 시간이 자유로웠다면 아마도 나는 그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그들의 자리에 끼어들어 하염없이 엔카를 들었을 것 같다.
   인구 150만의 시에서 마라톤 인구 일 만 명, 그들 중 40프로 가까운 여성 마라톤 인구도 놀라운데 운동복을 갖춰 입지 않고 평상복 차림으로 풀코스 42.195km를 완주하는 그들의 즐기는 듯한 태도가 놀라웠다.
저물 무렵 일본측 안내인들과 헤어지며 일행이 각자 숨겨 온 소주병을 털어 한 병씩 선물로 주었다. 미처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고민하다가 급조한 선물이었다. 숙소에서 쉬다가 늦은 저녁을 먹으러 택시를 타고 모지꼬항으로 출발했다. 야경을 감상하며 야끼카레와 맥주를 시켜 먹었다. 손님들이 많아 한참 기다려서야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밤바다가 보이는 이층은 사람들로 좌석이 만 원이어서 겨우 일층에 빈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이틀 묵었다는 건물을 올려다보며 십오 분여를 걸어 호텔로 갔다. 차가운 침대시트와 실내 공기는 건조했고 온풍기의 소음에도 불구하고 방은 덥혀지지 않아 밤새 추위에 떨었다. 잠옷 위에 겉옷을 껴입고 웅크려 떨며 자다가 대여섯 번이나 눈이 떠지고 뒤척였다. 지독한 에너지 절약에도 그들 국가는 부강하고 국민은 검소한 삶을 소박하게 이어간다. 일본경제의 침체와 엔화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 3세계, 동남아시아에 많은 돈을 지원하며 돕는 국가이다. 국제기구를 통해서건 비공인단체를 통해서건 그들은 세계로 눈을 돌리고 외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기타큐슈에서 유후인을 가기 위해서는 기차로 모지꼬역에서 하카다역까지 1시간, 하카다에서 구마모토역까지 2시간 10분이 걸린다. 승무원이 찰칵이를 들고 표를 검사하는 풍경이 오래된 이발소 사진의 흑백필름처럼 스쳐지나갔다.
온천도시는 수분을 머금은 싸락눈이 내렸다. 널리 알려진 온천임에도 개발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집집마다 마치 목욕탕을 운영하는 시골동네처럼 조상이 물려준 자연의 선물을 관리하고 있었다. 조용한 시골 가정집을 방문하는 느낌이 들었다. 야외 온천장에는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고 안개가 낀 수면위로 눈발이 날렸다. 오래된 나무 기둥과 나무 의자와 대나무 바가지, 소박한 야외샤워장은 이웃집에 마실 온 것처럼 간결했다. 소나무와 바위, 자잘한 식물들로 에워싸인 동산 주위로 새 떼가 날아다녔고 높은 나뭇가지에서 시끄럽게 지저댔다.
우리나라라면 거대 자본이 마을을 몽땅 밀어내고 최신식 현대시설을 갖춘 스파, 호텔 가족탕, 숙박 시설을 갖추어서 비싼 이용료를 받았을 법한 천혜의 자연을 그들은 아주 소박하게 전통 그대로 운영하고 있어서 신선해보였다. 대도시를 뺀 중소도시나 마을에 아파트나 고층 건물이 없는 것도,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조상이 살아오던 방식 그대로 건물을 짓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생활태도도 인상 깊었다.
다시 왔던 코스를 되돌아와 호텔에 도착한 후 근처 뒷골목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우리의 종로, 청진동과 낙원동을 연상시키는 음식점에는 늦은 저녁임에도 손님들로 북적였다. 
마지막 날 일행은 하카다역에서 구마모토행 신칸센 열차를 탔다. 다시 전차를 타고 셔틀버스를 타고 내린 곳은 구마모토성. 그곳에는 가등청정의 청동조각상이 작은 공원 초입에 세워져 있었다. 가등청정, 가토 기요마사가 누구인가. 임진왜란 때 제2군으로 2만이 넘는 군사를 끌로 조선으로 쳐들어온 인물이다.
가토 기요마사가 축조한 성 구마모토성은 화재로 일부 소실되어 60년대부터 복원 공사가 시작되어 아직도 진행 중에 있다. 병자호란 때도 청나라에 끌려간 조선 백성들이 있었고 그 이전 임진왜란 때는 많은 기술자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영주의 보호 하에 가업을 이어갔다. 손재주가 뛰어난 조선 백성들이 제대로 대접을 못받고 미천한 생활을 이어갈 때 일찌감치 기술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웃나라 장수는 기술자들을 데려다 그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키웠다.
일본인. 그들에게는 우리의 유전인자가 들어 있다. 여성들은 부드러우며 강인하다. 성실하며 검소하다. 지독하게도 에너지 절약을 하는 그들. 우리가 에너지 팍팍 쓰며 냉방기와 난방기를 돌리고 음식물 소비를 주체 못해 쓰레기가 넘쳐 날 때 그들은 식탁 위에 반찬그릇을 늘어놓지 않으며 최소의 음식으로 후대가 쓸 자원을 아끼고 있었다.
구마모토성에는 매화가 피어 흔들렸고 동백이 붉은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성의 영주 가토 기요마사도 백골이 되어 잊혀져간다. 그의 청동상을 바라보며 속으로 묻는다. 오래 전 남의 땅을 침략하여 수많은 생명을 고통에 빠뜨린 그 행위에 대해 변명을 해보라고. 조선은 그로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고.
    



**약력:2003년 《동서문학》신인상 당선. 소설집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오후 4시의 기억』. 장편소설『부용꽃 여름』,『바우덕이전』,『공녀, 난아』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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