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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들의 삶과 노래


일시 : 2018년 8월 11일(토) 오후 5시
장소 : 아라아트홀
협조 : 계간 리토피아, 계간 아라문학, 리토피아문학회, 막비시동인,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 대한노래지도자협회

발제자 : 천선자



1. 향가鄕歌의 개념
향가는 신라 시대부터(삼국시대 말엽에 발생하여 통일신라시대, 고려 초까지) 널리 불리던 정형시가定刑詩歌이며, 향찰로 표기된 우리 고유의 정형시가를 말한다. 향가 형식론의 핵심이 되는 ‘삼구육명’은 향가 해석에서도 우선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과제이다. 한시가 1행에 5언, 7언으로 배열하는 것인데 비해, 향가 작품 전체가 3구로 이루어지고 어떤 기준 단위에 6음보가 배열된다는 지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 기준 단위는 3구의 ‘구’인데, 향가에서 구에 해당하는 단위는 4행 및 2행이다. 그 중 2행이 기본이 된다고 보아 2행에 6음보가 배열된다는 말로 이해하였다. 이에 ‘삼구육명’의 ‘3구’는 ‘3구 구성’을, ‘6명’은 ‘2행 6음보 배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3구를 한 작품이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하다면, 한 작품이 1구 혹은 2구로 구성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삼구육명’이라는 용어로 지칭한 대상은 균여의 「보현시원가」인데, 이 작품들은 현존하는 항가 작품 중 가장 긴 부류에 속한다. 6명을 ‘2행 6음보 배열’로 파악하게 되면, 이는 현존 향가에 두루 적용할 만한, 매우 의미 있는 양식적 지표로 인식될 수 있다.
기존의 4구체, 8구체, 10구체 향가로 지칭했던 것을 4행, 8행, 10행 향가로 바꾸어야만 향가 형식에 대한 일관된 파악이 가능하다. 10행 향가에서는 1구에 해당하는 행이 2행과 4행 두 종류가 있고, 4행 및 8행 향가에서는 4행 1구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1구=2행이 기본 형식이고 그것이 결합되면서 1구 4행으로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6명’을 1구에 6음보씩 배열한다는 의미로 파악하는 동시에 그 1구가 2행을 기본 단위로 한다고 본 것이다. 4행, 8행, 10행 향가는 각각 2행+2행, [2행+2행]+[2행+2행], [2행+2행]+[2행+2행]+2행으로 해석하여, 그 각각의 2행에 6음보를 배열하는 것을 6명으로 지칭하였다고 생각한다.
 
2. 특징
향가는 차자표기 방식으로 쓰여졌고, 차자표기에는 향찰, 이두, 구결이 있다. 차자표기는 한자의 음(소리)과 훈(새김)을 이용하여 표기한다.

차용대상   표현(표기)     이해(해석)
음音          음차音借       음독音讀
                                          (글 따위를 소리내어 읽음, 한자를 음으로 읽음),
훈訓           훈차訓借      훈독訓讀
                                          (한자를 새김, 뜻으로 읽음)


(1) 향찰鄕札이라는 표기는 우리말의 음音을 한자를 빌어서 표기한 것이기 때문에 표기의 정확성이 우리말보다 떨어질 뿐만 아니라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해석상의 한계가 있다. 하지만 향찰은 우리말 문장 천체를 표기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향찰의 표기 구조는 대부분 어절(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마디) 단위이고 즉 개념을 나타내는 부분은 한자의 본뜻을 살려서 표기하고, 조사나 어미와 단어의 어말음(복합어, 독립된 단어 표제어의 직접 구성 성분을 분석한 결과를 표시) 부분을 나타내는 토는 한자를 표음문자로 이용하여 표기하였다. 향찰로 표기된 향가는 음독, 훈독 표기에 따라서 해석본은 낙구(9,10)를 제외한 상당 부분의 해석에 차이를 보인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夜(밤야), 入(들입) 伊(저이)
-뜻: 밤, 들다, 저 
-음: 야, 입, 이
-향찰해석:밤들이(밤드리)//밤이 들도록
夜:밤이라는 실질형태소 사용(훈차)
入:‘들다’에서 어간인 ‘들’로 사용(훈차)
伊:‘저’에서 ‘이’로 사요 형식형태소(음차)

「서동요」의 예


1. 善化 公主主隱:‘선화공주니믄’으로 읽는데 별 문제가 없다.
2. 也密只嫁良置古(타밀지가량치고): 본행의 ‘어러두(嫁良置古)’에 대한 기존의 해석은 양주동이 얼-(嫁)의 원뜻을 ‘交’ ‘合’으로 본 이후 단어에 대해 ‘서동’을 사귀어 두고/불어두고,(지헌영, 이탁) ‘交合’해 두고(김준영, 서재극), ‘짝 맞추어 두고(김완진), 결혼, 관계해 두고(강길운)’ 등으로 풀이하였다.
또한 ‘交合’의 의미를 부각시키지는 않으면서도 ‘시집 갓(홍기문), 정드려 놓고(정렬모)’, ‘몸바쳐 두고(김선지), 정을 두고(유창균)’, 더 나아가 ‘어린 아이, 사생아를 두고(양희철)’까지 해석하였다. 기존의 해석이 선화공주의 사통을 상정한 데는 양주동의 ‘交’, ‘合’설이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얼’ 의미에 대해 재검토해 보기로 하겠다. 본 어형이 ‘嫁良(가량)-’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嫁가’는 사동 또는 피동형의 ‘얼이-’가 아니라 자동사로서의 ‘얼-’일이 분명하다. ‘얼이+아/어 얼여’였다면 ‘-良-’보다는 ‘남진얼다, 남진어르다(嫁)/겨집어르다, 얼운 얿다’ 등을 들 수 있다.
시집이나 장가를 가는 것은 곧 어른이 되는 것이며, 여성의 입장에서는 어린애의 티를 벗고 사랑스런 모습, 곧 성년의 여인이 된다는 의미이다. 이 세 가지 용례는 서로 연관된 의미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다, ‘얼’의 원뜻은 이와 같이 ‘시집, 장가가다, 어른이 되다, 시집갈 나이가 되어 사랑스럽다’이며, ‘交’, ‘合’의 뜻은 동일어근에서 파생한 의미로 생각된다. 支지/攴복의 용법을 정리해 보면 명사형, 부사형, 관형사형 전성어미, 연결어미 또는 첨사, 문장과 문장 사이, 어간과 어간 사이, 어간과 선어말어미 사이, 『삼국유사』의 향가와 「처용가」, 「칭찬여래가」, 「도솔가」, 「청전법륜가」 등에 여러 번 쓰였다.
기期는 관형사형 어미, -知지는 사람을 지칭하는 접미사, 居거는’일정한 곳에 머물러 살다, 혹은 머물러 있다. 冬동: ᄃᆞ/다, 居叱거질:잇-, 居, 住, 留유의 공통된 의미인 ‘머물다’이다, 중세어에서는 ‘머믈다’로 나타나는데, 이와 함께 ‘머믓ᄒᆞ다/머뭇거리다’ 및 ‘멈초다/멈치다(멈추다)’를 아울러 생각해 볼 수 있다. 沙사는 강세사, -내(及급)는 형태상 ‘ᄆᆞᄎᆞᆞ내’ 접미사 ‘-내(及)에 속격의 (叱질)’이 붙은 형태로 볼 수 있다. 접미사 ‘-내’의 의미를 독립시켜 파악한다면 ‘마치는 동안, 마치기까지’이다. 다시 말해 ‘-내’는 어느 시점에서 어느 시점까지의 경과된 시간을 통틀어서 지칭할 때 사용되는 접미사이다. ‘露로’는 훈독으로 읽으면 나타나다, 드러나다,(露出), ‘曉효’는 소창진평의 훈독으로 읽으면 ‘밝다’가 되고, 양주동은 음독을 주장하여 의견이 갈린다. ‘沙사是시’ ‘모래’ 고어에서 ‘몰개-몰애-모래’로 변화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향가에 쓰인 ‘於어’를 음독으로 읽으면 ‘어/오’가 된다. 山뫼산를 훈독(뜻)으로 읽으면 뫼이고 음독(소리)으로 읽으면 산이다. 일본어의 표기법은 훈독과 음독으로 표기하는데, 이것은 신라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2) 이두吏讀는 주로 하급 관리들의 공문서에 쓰인 차자표기이며 우리말 어순에 맞게 배열하고 이에 우리말 조사나 어미 등을 넣어 쓰는 차자표기이며, 주로 인명(사람 이름)과 지명(땅 이름)을 표기하기 위한 것이다.
(3) 구결口訣은 한문 원문에 넣어 읽는 토를 표기하는데 쓰인 차자표기이다. 불교나 유교의 경전을 읽을 때 우리말로 된 조사나 어미를 각 구절 아래에 넣어 읽었는데 쓰이는 표기방식이다. 향가의 차자표기방식은 향찰로 표기하였고, 향가는 4구체, 8구체, 10구체가 있다. 먼저 4구체 향가의 초기 형태는 민요나 동요가 정착된 것으로 보이고, 8구체 향가는 4구체에서 발전된 형태로 4구체에서 10구체로 발전해 가는 과도기적 형태를 보인다. 10구체는 가장 정제되고 세련된 형태로 ‘4구+4구+2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지막 2구인 ‘낙구’(마지막 첫머리는 반듯이 감탄사)로 시작된다. 감탄사는 앞에서 전개된 내용의 정서적 고양과 전환을 보임으로써, 시의 완결성을 추구하고 형식적 완결성을 보인다. 초장-중장-종장을 갖춘 시조의 형식으로 발전된 것으로 본다.


3. 내용
민요, 동요, 토속 신앙에 대한 것, 임금을 그리워하는 노래, 나라를 다스리는 노래 등 다수가 불교적 기원과 신앙심을 노래한 것이 가장 많다.


4. 내용상 분류
(1) 치리가(5편) : 유리왕 대 「도솔가」, 「혜성가」, 월명사 「도솔가」, 「안민가」, 「신공사뇌가」.
(2) 사뇌격 서정시가(6편) : 「송사다함가」, 「모죽지랑가」, 「헌화가」, 「원가」, 「제망매가」, 「찬기파랑가」.
(3) 불가佛歌(3편) : 「원앙생가」, 「도천수대비가」, 「우적가」.
(4) 번해飜解 불찬가佛讚歌(1편) : 「보현시원가」.
(5) 민요 및 음가淫歌(3편) : 「서둉요」, 「풍요」, 「처용가」.
(6)헌가獻歌 및 조가弔歌(2편) : 「향풍체가」, 현종과 신하들의 공동창작 「도이장가」.

5: 작가별 분류
(1) 군왕(3인):원성왕 「신공사뇌가」, 현종 「현화사 향풍체가」, 예종 「도이장가」.
(2) 승려(3인):광덕 「원앙생가」, 영재 「우적가」, 균여대사 「보현시원가」.
(3) 낭승郞僧 및 낭도郎徒(4인):융천사 「혜성가」, 월명사 「월명사」, 「도솔가」, 「제망매가」, 충담사 「찬기파랑가」, 「안민가」, 득오 「모죽지랑가」.
(4) 고위관리(1인) : 신충 「원가」.
(5) 여성(2인) : 미실 「송사다함가」, 희명 「도천수대비가」.
(6) 평민(1인) : 견우노옹 「헌화가」.
(7) 작자 미심未審(4건) : 유리왕 대 「도솔가」, 「서동요」, 「풍요」, 「처용가」. 위와 같이 향가의 작자 층이 위로는 군왕으로부터 아래로는 시골 영감이나 평범한 아낙네에 이르기까지 계층, 신분, 고하를 초월하여 아주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이 분류에서 작품의 임자가 없는 것이 있다. 끝에 작자 미심이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먼저 유리왕은 「도솔가」의 작자다. 「도솔가」는 나라에서 제정한 가악이라서 지은이를 거론할 수 없다. 「서동요」를 지었다는 서동(후에 백제 무왕)은 왜 빠졌는가. 군왕으로 보고 그쪽에 귀속시키자는 견해도 있으나 「서동요」를 신라 전래의 동요로 규정하는 입장에서는 특정 작자가 없는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풀기에 아주 힘들고 곤란한 노래의 작자가 「처용가」이다.
노래를 읊은 이의 이름은 밝혀져 있으나 그가 어떤 신분과 계층의 인물인지는 단정적으로 언급할 수 없다. 울산 지방 토호의 아들이니 이슬람 상인이니 하는 설이 대표적으로 떠올라 있지만, 어느 하나로 확정짓지 않고 복수로 그냥 놔두기로 한다. 미실은 귀족여인이고 희명은 평민여인으로 두 사람의 신분이 다르나, 당시 여성의 지위가 낮은 사회였고 여성이 창작한 경우가 매우 드물었기에 모두 여성작가로 분류하였다. 군왕 항목에 경덕왕이 빠진 것은 향가를 직접 지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작가들보다 향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위 표를 보고 의아해하거나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왜 향가 작가에 ‘화랑’이 없느냐는 것이다. 낭도(득오)와 낭승(유천, 월명, 충담)만이 있다. 「찬기파랑가」와 「모죽지랑가」 이 두 편은 작품 안의 주인공이 화랑일 뿐 지은이는 낭도 또는 낭승이다. 향가는 내용이 다양하다는 점이고 작자 층은 속요, 민요가 궁중 악가로 전화된 것이므로 「정과정」 외에는 지은이를 알 수 없으니 견주기에서 제외된다.
대비할 대상은 시조다. 조선 후기에 평민 가객들이 등장하여 창작 및 가창 활동을 한 것을 제외하면 시조는 장르생성 초기부터 수백 년 동안 사대부 문학으로 한정된 장르였다. 특정 계층의 시가였다. 편의에 따라 그 옆자리에 향가를 잠깐 놓고 따져 보자,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금세 간파할 수 있다. 요즘 말로 하자면 향가는 작자와 내용 모든 면에 걸쳐서 ‘국민문학’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시가문학 전사全史의 측면에서 조명할 때, 향가는 가사歌辭와 함께 그렇게 규정할 수 있다.


6. 수록 문헌
『삼국유사』에 남아있는 향가 14수:1.「죽지가竹旨歌」, 2.「헌화가獻花歌」, 3.「안민가安民歌」, 4.「기파가耆婆歌」, 5.「처용가處容歌」, 6.「서동요薯童謠」, 7.「득안가得眼歌」, 8.「공덕가功德歌」, 9.「왕생가往生歌」, 10.「도솔가兜率歌」, 11.「제망매가祭亡妹歌」, 12.「혜성가彗星歌」, 13.「원가怨歌」, 14.「우적가遇賊歌」가 실려 있고, 『균여전』에 남아있는」 향가 11수는 1.「예불가禮佛歌」, 2.「여래가如來歌」, 3.「공양가供養歌」, 4.「참회가懺悔歌」, 5.「공덕가功德歌」, 6.「법륜가法輪歌」, 7.「주세가住世歌」, 8.「불학가佛學歌」, 9.「중생가衆生歌」, 10.「회향가廻向歌」, 11.「총결가總結歌」가 실려 있고, 『삼국사기』, 『화랑세기花郎世記』 등을 꼽을 수 있다.
전승 상 특징으로는 각각의 작품은 배경 설화와 함께 전승되는데, 향찰로 표기된 노랫말을 앞이나 뒤에 그 노래와 관련된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설화적 성격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나 노래가 창작될 당시의 역사적 사실이 기술되기도 하였다.


善化公主主隱(선화공주주은)
他密只嫁良置古(타밀지가량치고)
薯童房乙(서동방을)
夜矣卯乙抱遣去如(야의묘을포견거여)
―「薯童謠」 전문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시집가 놓고
서동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밤이면 만난다.)


현존하는 4구체 향가는 위의 「서동요」, 「풍요」, 「헌화가」, 「도솔가」가 있고, 「서동요」는 향가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이며, 설화에서도 서동은 이 노래를 아이들이 부르도록 하여 왕의 딸인 선화공주와 결혼하고 후에 백제의 왕이 된 인물이다. 설화와 노래는 반드시 붙어다닌 것이 아니라 노래는 노래대로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왔고, 설화는 이 노래의 유래를 설명하기 위하여 후인이 지어낸 것으로 보인다. 향가에 쓰인 차자표기방식인 향찰의 해석은 고어로 해석한 다음에 다시 현대국어로 해석하는 어려움이 있고 현존하는 작품만으로는 해석에 어려움이 있다.


東京明期月良(동경명기월량)
夜入伊旅行如可(야입이여행여가)
入良沙寢矣見昆(입량사침의견곤)
脚烏伊四是良羅(각오이사시량라)
二肹隱五下如叱古(이힐은오하여질고)
二肹隱誰支下焉古(이힐은수지하언고)
本矣五下是如馬於隱(본의오하시여마어은)
奪叱良乙何如爲理古(탈질량을하여마리고)
―「처용가處容假」 전문


8구체 향가는 「처용가」를 비롯해 「모죽지랑가」 단 두 수뿐이며 4구체에서 10구체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기에 있는 작품으로 해석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이 노래의 전체를 한데 잇대어 썼지만 짜임은 3장으로 되어 사뇌가 시형을 유지하고 있다. 초장은 제4구까지로서 밝은 달밤에 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보니 역신이 아내를 범하였더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들고 있다. 중장은 제5, 6구로서 ‘다리 둘은 내 것이지만 나머지 둘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말로서 침입자를 나무라는 뜻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 말 속에는 당황하는 기색, 의구하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제7구의 맨 앞에 나오는 ‘본다’는 차사嗟辭로 볼 수 있다. 사뇌가 형식에서 종장의 시작을 표시하는 차사가 이 부분에 나옴으로써 여기부터가 종장이 되는 것이다. 종장의 의미는 제8구의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마지막 구의 해석에 관하여는 양주동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연구자가 체념으로 해석했지만, 그렇게 보기보다는 적극적인 대항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본디 내 해인데 앗아가다니 된 말인가’ 하는 강한 저항이다. 단념이 아닌 항거의 뜻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처용은 동해 용왕의 아들로 헌강왕에 의해 경주에 들어와 벼슬과 아내를 얻었다. 그의 아내가 역신과 동침한 것을 보고 이 노래를 불렀더니 역신이 물러났다. 처용의 이야기 뒤에 처용무處容舞, 처용희로 전승되었으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노래와 춤이 지속되었다. 12월 그믐에 잡귀를 물리치는 때에 처용놀이를 하기도 했다. 처용랑 망해사 설화는 망해사 창건에 얽힌 이야기와 그리고 몇 차례에 걸쳐 나라가 망할 것을 신이 미리 예고했지만, 왕과 신하들은 방탕한 생활에 젖어 끝내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며 고려가요에도 「처용가」가 이어져 내려온다.


生死路隱(생사로은)
此矣有阿米次肹伊遣(차의유아미차힐이견)
五隱去內如사叱都(오은거내여사질도)
毛如云遣去內尼叱古(모여운견거내니질고)
於內秋祭早隱風未(어내추제조은풍미)
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차의피의부량락시엽여)
一等隱枝良出古(일등은지량출고)
去奴隱處毛冬乎丁(거노은처모동호정)
阿也彌拖刹良逢乎吾(아야미타찰량봉호오)
道修良待是古如(도수량대시고여)
―「누이가(祭亡妹歌)」 전문


삶과 죽음의 길은
이에 있음에 두려워하여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갔는가?
어느 가을철 일찍이 부는 바람에
여기저기에 지는 나뭇잎처럼
같은 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아아, 극락세계에서 만나볼 나이니
불도를 닦으며 기다리련다.


이 노래는 3장으로 된 10구체(사뇌가)이다. 종장 앞의 ‘아야’阿也는 차사嗟辭이다. 초장에서는 삶과 죽음의 허무, 무상과 두려움을 나타냈다. 중장에서는 형제는 마치 한 나무의 잎과 같이 한 데서 났으니 죽어서도 한 곳에 모이자는 뜻이 있다. 인생의 유약함과 고독이 담겨 있다. 종장에서는 우리는 극락세계에서 함께 태어날 것을 믿고, 불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다는 의지로 마무리하고 있다. 형제간의 인륜, 세상 버림에 대한 삶의 허전함이 이 시 속에 깔려 있다.
배경 설화에서는 월명사가 「도솔가」를 지은 사연을 설명하면서, 월명사가 어느 때인가 먼저 죽은 누이동생을 위해 극락 가기를 원하는 제를 올리면서 이 노래를 불렀는데, 그때 갑자기 돌개바람이 불어 종이돈을 휘몰아 띄워서 그 종이돈이 서쪽으로 날아갔다는 것으로 월명의 신비한 힘을 나타낸 것이다.
향가를 지은 신라의 유일한 왕―원성왕의 「신공사뇌가」, 경덕왕 대로부터 20년이 경과된 785년에 38대 원성왕이 즉위하여 798년까지 10여 년 동안 신라를 다스린다. 그는 뜻밖에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 꿈 같은 내력이 『삼국유사』, 원성왕 대조와 『삼국사기』 동 왕조에 실려 있다. 선왕인 37대 선덕왕(780∼785재위)의 뒤를 이을 주인공은 왕의 족자인 김주원이었다. 선덕왕이 서거하자 이에 국인들은 그를 받들어 새 왕으로 삼으려 하였다. 공교롭게도 폭우가 쏟아져서 그의 집이 있는 북천의 물이 갑자기 불어나 어느 누구도 건너지 못하는 사태가 있어났다. 이에 선왕의 아우인 경신, 곧 원성왕이 먼저 궁궐에 들어가서 즉위하자(그때는 그런 특례가 있었던 모양이다.) 주원을 옹위하려던 무리들도 모두 합세하여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하례를 올렸다. 군왕은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있거니와 이 경우가 바로 그런 예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용상에 오르지 못한 김주원은 강릉으로 내려가서 삶의 터를 새로 잡는다. 그리고 ‘강릉김씨’의 시조가 된다.
대왕이 궁달의 변을 익히 잘 알아 「신공사뇌가身空詞腦歌」를 지었지만, 노래는 유실되어 알 수 없다. 가사가 전해 오지 않으므로 「신공사뇌가」가 어떤 노래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당시의 서사기록을 곱씹다 보면 그 대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해답의 단서가 바로 궁달窮達의 변화다, ‘궁달’이라 함은 통달과 불통, 뚫림과 막힘, 성사와 실패, 행과 불행, 선순환과 악순환, 명과 암을 말하는 것이고, 그 이치를 임금이 익히 잘 알고 있었다고 기록은 증언하고 있다. 왕의 그러한 능력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는가, 바로 (원성대왕) 조선사기록 그 자체에 해답이 숨어 있다. 서사기록의 첫머리는 경신이 왕이 되기 전에 괴이한 꿈을 꾼 얘기로 시작한다. 꿈은 두 사람의 해몽자에 따라 흉몽과 길몽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결국 길몽으로 낙찰되어서 그는 뜻밖에 왕위에 오른다. 56대 경성왕은 일생일대에 가장 운명적인 순간을 앞두고 흉과 길, 곧 명과 암, 선순환과 악순환의 극단적인 변화를 몸소 겪으면서 궁달의 불측한 움직임의 결과를 체득하여서 향가 작품을 만든 것이라 추측하고 작품의 내용도 이를 바탕으로 추측할 뿐이지만, 경성왕은 그 자신이 향가를 직접 지어서 정치를 하고 치국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향가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고 다른 군주도 향가를 지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향가의 경우는 비록 불교와 화랑단 세력이 주류를 이루었던 시대의 문학이요, 그 때문에 이 두 계통의 노래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사실이나 그 외의 작품들도 무시할 수 없으리만큼 전해온다. 신라인의 정서와 사유세계가 어디에 묶이지 않은 상태에서 폭 넓고 단조롭지 않았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군왕 항목에 경덕왕이 빠진 것은 향가를 직접 지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작가들보다 향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향가는 내용이 다양하다는 점이고 작자 층은 속요, 민요가 궁중 악가로 전화된 것이므로 「정과정」 외에는 지은이를 알 수 없으니 견주기에서 제외된다. 대비할 대상은 시조다. 조선 후기에 평민 가객들이 등장하여 창작 및 가창 활동을 한 것을 제외하면 시조는 장르생성 초기부터 수백 년 동안 사대부 문학으로 한정된 장르였다. 특정 계층의 시가였다. 편의에 따라 그 옆자리에 향가를 잠깐 놓고 따져 보자,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금세 간파할 수 있다. 요즘 말로 하자면 향가는 작자와 내용 모든 면에 걸쳐서 ‘국민문학’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시가문학 전사全史의 측면에서 조명할 때, 향가는 가사歌辭와 함께 그렇게 규정할 수 있다.


7. 표현과 언술
향가의 표현기법에 대해서도 한 번 살펴보기로 한다. 워낙 오래된 최초의 시가문학이므로 수사 면에서 썩 볼 만한 것이 없다고 속단하기 쉽다. 그러나 음미해 보면 그렇지 않다. 예사롭게 보아 넘길 것도 있지만, 당시 문화적 환경과 수준을 감안할 때 괄목상대할 만한 작품도 여럿 있다는 점에 우리는 유의한다. 비유법을 비롯하여 의장意匠 면에서 눈에 띄는 몇 노래들은 현대시와 키 재기를 할 만한 정도다. 「혜성가」의 무화無化 기법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혜로운 대응과 해법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고 할 만하다. 이러한 수법을 20세기의 사백詞伯인 한용운의 시 다수에서 다시 접할 수 있다는 점은 반복해서 말하여도 괜찮다. 한용운이 즐겨 사용하던 기법이 그도 모르게 이른 시기인 신라의 향가에서 이미 잉태되었다면 표현 면에서 향가와 현대시를 한자리에 앉혀도 무리가 없는 처리라고 판단한다.


月下伊底亦(월하이저역)
西方念丁去賜里遣(서방념정거사리견)
無量壽佛前乃(무량수불전내)
惱叱古音多可攴白遣賜立(뇌질고음다가복백견사립)
誓音深史隱尊衣希仰攴(서음심사은존의희앙복)
兩手集刀花平白良(양수집도화평백량)
願往生願往生(원왕생원왕생)
慕人有如白遣賜立(모인유여백견사립)
阿邪此身遣也置遣(아사차신견야치견)
四十八大願成遣賜去(사십팔대원성견사거)
―「원왕생가」 전문


기원이라기보다 ‘갈망’, ‘열망’이라는 것이 더 적절한 「원왕생가」 결사結使(번뇌를 달리 이르는 말)를 놓고 보자. 붙잡고 늘어지기 식의 악(집)착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7행. 二千萬隱吾羅(이천만은오라)
8행. 一等沙隱賜以古只內乎叱等邪(일등은사이고구내호질등사)
―「도천수대비가」 일부


그와는 생판 다르게 천수대비가라고도 하는 「도천수대비가」 7, 8행은 욕망 축소를 통한 낮춤과 겸양의 기법을 따르고 있다. 이 두 상반된 언술이 같은 성격의 기원가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도 인상에 남는다. 불교의 기원가가 아니어서 위 두 편과 함께 거론하지 않고 따로 감상한 「모죽지랑가」는 과거 회상에서 비롯된 찬모의 음성이 자못 간절한 노래다. 그 어간에 상사인 죽지랑을 간절히 만나고 싶어 하는 대목이 끼어 있어서 부처와 인간 사이만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정의 또한 소중한 것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7행. 郞也慕理尺心未行乎尺道尺(랑야모리척심미행호척도척)
8행. 蓬次叱巷中宿尺夜音有叱下是(봉차질항중숙척야음유질하시)
―「모죽지랑가」 일부


그런 「모죽지랑가」의 핵심은 7, 8행 끝부분에 놓여 있다. 7, 8행에서 죽지랑이 자신을 구하러 오고가는 그 길이 험한 거리에서 노숙할 만큼 고생스런 길일 수 있음을 염려한 대목이다. 우선 득오가 불안한 정세에도 불구하고 죽지랑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가질 수 있었던 배경 기사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1920년대를 전후하여 생산된 근대시 가운데 많은 시인들의 항일 저항시인 ‘임의 노래’들에 용해되어 있는 ‘지절志節’의 어법과 만나게 된다.
향가와 현대시의 맥락 연결을 여기서도 다시 시도할 수 있다. 향가와 현대시의 닮음이 그와 같다면, 단연 「찬가파랑가」를 화제에 올리지 않을 수 없다. 7, 8행에서 시작하여 결사에 이르기까지 화자가 굳게 다짐하면서 진술한 맹세는 다름 아닌 지절의 강조다. 「모죽지랑가」보다 사설에서 두 줄(7, 8행)이 더 많으니 다짐의 농도가 그만큼 짙다고 할까. 첫 줄에서부터 계속 이어지는 뛰어난 비유법에서 우리는 「찬기파랑가」를 천여 년 전 옛 시가라고 느끼지 않는다.
바로 이 시대의 시인 양 착각한다. 향가와 현대시는 이처럼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자주 있다. 「제망매가」를 보자, 오누이의 혈연관계와 누이의 죽음을 비유로 표현한 기법은 적절하기는 하나 산뜻하지는 못하다. 그 시대에도 이런 정도의 수사법은 범상한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다만 그런 예사로운 대목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해놓은 구성은 자못 돋보인다. 듣고, 읽은 이가 공감하면서 감상에 젖게 하리만큼….
「제망매가」와 내용뿐만 아니라 표현까지도 비슷하게 닮은 현대시를 찾는다면 단연 박목월의 「하관下棺」이다. “棺이 내렸다/깊은 가슴 안에 밧줄을 달아 내리듯/주여 용납하소서/머리맡에 성경을 얹어 주고/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좌르르 하직했다…”로 시작되는 「하관」도 전반부에 기독교 용어가 나오지만 전체로 보면 그냥 순수 서정시다. 두 편이 세월을 뛰어넘어 워낙 유사하여서 구차한 해설을 피하기로 하겠다.
「헌화가」의 능청스런 말 걸기, 행동으로는 잣나무를 고사시키지는 비유, 사설만은 체념으로 끝낸 「원가」의 비수처럼 무서운 양면성 등도 눈여겨볼 만한 어법이라고 하겠다. 즉 고려가요 「처용가」는 향가 「처용가」와 마찬가지로 처용이 역신을 몰아내는 逐邪축사(귀신이나 사악한 기운을 물리쳐 내 쫓음)의 내용을 지닌 일종의 무가이다. 처용의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고, 역신에 대한 처용의 분노가 절실하게 나타나 있어서 희곡적 분위기가 강하다. 향가 「처용가」의 일부분이 들어있다.
신라의 향가는 고려시대에서는 궁중의 나례儺禮(잡귀를 쫓는 의식)와 결부되어 처용희, 처용무로 발전되었다. 향가 「처용가」와 고려가요 「처용가」의 차이점은,
(1) 신라 처용가가 1인 처용의 독백체였던 것에 비해 고려 처용가는 서술자와 역신의 목소리도 등장하고 있다.
(2) 고려 처용가는 처용, 열병신(천영두, 홍역, 학질을 일으키는 질병신), 그리고 서술자 등의 등장인물이 등장하기에 연극적 요소가 더 강화되어 있다.
(3) 신라 처용가가 전승 과정에서 무속과 불교가 습합된 작품이 고려 처용가이다.
(4) 신라 처용가는 작품 자체에서 벽사의 기능이 나타나지 않고 배경설화에서만 확인되지만, 고려 처용가에서는 작품 자체에 벽사진경의 내용이 담겨 있다.


8. 향가, 그 현대시로의 변용
처용랑 망해사조에 원본이 실려있는 「처용가」는 간단히 풀릴 향가가 아니다. 「처용랑處容郞 망해사望海寺」 조건 전체를 제대로 해석하는 일 자체가 어렵기 짝이 없으니 작품을 학문적으로 고찰하는 작업 또한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처용가」에 관한 연구는 다른 향가의 경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활발하고 양적으로도 풍성하다. 난해하다는 그 점이 학자들로 하여금 천착의 충동심을 품게 한 결과이다. 현대시로의 재창작도 국문학계의 사정과 비슷하다. 진작부터 여러 시인들에 의해서 현대시 「처용가」 창작은 시도되었다. 이제 그 가운데서 미당, 박희진, 박제천, 등의 시를 읽기로 한다.

동경 밝은 달밤에/밤드리 노닐다가/들어가 자리 보니/가리리 네히러라/둘은 내해요/둘은 뉘해인고/내해다마는/앗아날 어찌할꼬

작품만을 놓고 보면 향가 「처용가」는 영락없이 간통을 주제로 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것처럼 쉬운 향가도 없다. 그러나 막상 관련 기록과 연관시켜서 성찰키로 하자면 어려움은 겹겹으로 포개진다. 위에서 본 신라 시대의 향가에서 보이는 「처용가」와 비교하면서 아래의 향가를 읽어본다.   
 
달빛은/꽃가지가 휘이게 밝고/어쩌고 하여/여편네가 셋서방을 안고 누운 게 보인다고서/칼질은 하여서 무얼하노?/고소는 하여서 무엇에 쓰노?/두 눈 지긋이/ 핑동그르르… 한 바퀴 맴돌며/마후래기 춤이나 추어 보는 것이라/피식!/그렇게 한바탕 웃으며/잡신아! “잡신아!/만년 묵은 이 이무기 지독스런 잡신아!/어느 구렁에 가 혼자 자빠졌지 못하고/또 살아서 질척질척 지르르척/우리집까정 빼지 않고 찾아 들어왔느냐!”/위로엣말씀이라도 한마디 얹어 주는 것이라/이것이 그래도 그 중 나은 것이라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하여 시인 자신의 생각도 보태어서 생산해낸 질박한 노랫가락 형태이다. 처용의 행위를 슬기의 미덕으로 규정하고 “이것이 그래도 그 중 나은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상실을 자위로 상쇄시켰다고 해석해도 좋다. 그래서 제목도 「처용훈」이다. 이 시의 특색은 ‘구수한 입담’에서 찾을 수 있다.
향가 「처용가」의 진술적인 표현을 구어체의 입담으로 바꿔 놓음으로써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칼질은 하여서 무얼 하오?/고소는 하여서 무엇에 쓰노”에서 민속악의 가락을 떠올릴 수 있고 “여편네가 샛서방을 안고…” 어느 구렁에 가 혼자 자빠졌지 못하고/또 살아서 질척질척 지르르척…”을 통해서는 비속함도 겸한 토속적인 언어미를 만끽할 수 있다.
박희진의 시도 옛 기록의 큰 흐름 위에 놓여 있으나 설명이 부연되고 주제가 확장된다는 점에서 그의 다른 시와 거리를 두고 있다.


달빛이 이렇게 바다속까지 스미어들 땐/두고 온 고향 생각이 나서 그래/망해사에서 아버지 동해의 용을 생각하고/흘린 눈물 두세 방울…//그냥 바닷속으로 진주인 양 굴러 떨어지데/우리 칠칠한 용의 형제가/수정궁에서 희롱하며 놀던 때가/어젯일처럼 눈앞에 삼삼한데//(……)//그런데 나는 정말 간이 콩알 만해졌었다오/피는 얼어붙고 머리칼은 곤두서고/당신을 덮친 그 사나이가 어쩌면 나를/고대로 빼내다니, 엄지발가락 긴 것까지//나는 그만 어이없는 웃음이 새나왔소/도대체 어떤 개새끼가 이 따위야/처용을 빼낸 또 하나 다른 처용……/당신이 속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소(향가 「처용가」 생략―필자 주)//나는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서/밖으로 나오는데, 차라리 춤을 추며/휘영청 달이 이끄는 곳이라면/다시 아무데나 따라나설 참이었지//(……)//이렇게 그는 뉘우치고 사라졌소/자 이젠 당신도 나를 따라 춤을 추소/노래와 춤엔 귀신도 감동하고/역신도 얼씬 않지 사귀邪鬼 달아나고
―「처용가」 2-3, 6-8연


2,3연은 고향을 떠나온 외래인의 고적과 슬픔을 읊조린 것이다. 원래의 기록에는 없는 내용인데 야심한 시간에 경주의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것이 “서울의 밤거리가 좋아서는 아니라오”(생략한 1연 끝줄)라고 말하게 된 경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첨가시켜 놓은 연들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인 향수심과 비록 군왕의 극진한 후원이 있었으나 끝내 객지인 경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아웃사이더의 심정을 헤아렸다는 점에서 무리함을 찾을 수 있다.
6, 7, 8연에서도 합리화는 이어진다. 그런데 이때의 합리화는 아내의 부정과 화자가 입은 결손의 충격을 무화시키기 위한 것이어서 전자와 성격을 달리한다. “당신을 덮친 그 사나이가 어쩌면 나를/고대로 빼내다니, 엄지발가락 긴 것까지” 아내를 덮친 사내가 또 하나의 처용이라고 말하면서 “당신이 속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소” 운운한 대목에서 우리는 슬프도록 너그러운 처용의 금도(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와 비극적인 상황은 처용의 선한 마음을 읽게 된다.
향가 「처용가」는 체념으로 끝난다. 그것과는 달리 박희진의 시는 그 보다 진전된 적극성을 발현한다. 일체를 무화시킨 그는 “자 이젠 당신도 나를 따라 춤을 추소”라고 권유하면서 친화의 세계를 연다. 역신疫神으로 비의된 침입자의 사죄를 받아들인 이상 죄 없는 아내를 타박하고 배척할 이유 또한 없는 것이고, 그래서 함께 가꾸어 나가자는 뜻이리라.
이렇게 되면 향수로 인한 고독과 착근着根에 실패한 외래자의 좌절도 동시에 극복될 확률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 고전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려는 박제천의 노력은 끈질기다. 다른 향가의 변용에 이미 익숙해 있는 우리지만 새로 지어낸 그의 「처용가」를 읽으면 이러한 낯선 체험을 거듭 하게 된다. 예컨대 ‘합리성’의 추구는 박희진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는 동방으로 가면 한몫 쥔다는 소리에 배를 탔습니다. 험한 뱃길이 고비를 넘겼다 싶을 즈음 안개에 휩싸여 조난을 당했습니다(……) 이윽고 원주민들이 몰려와 그들을 애워쌌으므로 겁이 나고 두려움에 떨면서도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어보였습니다. 사람들은(……) 다만 한 사람, 일행 중에 가장 젊었던 그를 볼모로 삼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용왕의 아들로 받들었으며 벼슬과 여자를 주었습니다(……) 아무것도 그리울 게 없을 고향 생각에 시름이 겨운 것은 어쩔 수 없어 술에 취해 지내는 나날이었습니다. 그런 어느날 밤 이슥히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왔던 그는 못 볼꼴을 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꿈속에서 사는 터 까짓것 오쟁이를 지면 어떠랴 사람 사는 세상은 똑 같구나 에라 춤이나 추고 노래나 부르자 남은 술기운에 부추겨 그는 춤추며 노래 부르면서 어디론가 사라져 갔습니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집집마다 그의 화상을 그려 붙여 잡귀를 막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신이 된 한 젊은 사내의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니 저절로 쓴웃음을 짓게 됩니다. 처용이여 그대는 어떤가

위의 박제천의 「처용가」는 보고 형식의 구어체로 일관하다가 끝 단락에서 당사자에게 물음을 던지는 것으로 전환시킨 구조가 이채롭다. 구어체라는 점에서는 미당과 다를 바 없지만 산문 투의 진술 방식을 취하면서 구수한 입담이 주는 웃음을 제거해 버렸다는 측면에선 다르다. 그러나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중심 화제, 곧 처용과 관련된 모든 사건을 웃음거리로 깎아내려서 희화화시켜 놓은 기록의 완벽한 변용에서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시인의 기본 인식인, 즉 처용은 당초부터 ‘별 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이다. 용자 운운하지만 그건 다 헛말이고 해상에서 조난당하여 어쩔 수 없이 신라의 어느 갯벌에 허우적거리며 상륙한 이국의 장사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처용의 신분을 이렇게 설정해 놓고 보면 그 뒤의 서사 전승은 하릴없는 사람들이 과장해 놓은 것, 꾸며낸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시인으로 하여금 더욱 기가 막히게 한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면 있기 마련인 남녀의 불륜을 처용이 마치 달관한 도인인 양 이를 가무로 극복하여 마침내 벽사진경辟邪進慶(사귀를 쫓고 경사로운 일을 맞이함)의 문신이 되었다는 점이다. 못 볼꼴을 보고서 이방인의 신세를 한탄하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음이 분명한데, 소설 쓰기를 해도 이것은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에서 화자는 그만 ‘쓴웃음’을 짓고 만다. 그리고는 이 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처용이여 그대는 어떤가, 라는 물음을 내 놓는다. 처용이야말로 그가 당한 실상을 제대로 꿰뚫고 있는 당사자인 그가 이 이야기를 들으며 포복절도할 것이 분명하다는 함의가 거기 단간短間에 내포되어 있다. 난해하다는 항가 「처용가」를 박제천은 이렇듯 터무니없는 해프닝으로 간주하고 단순하게, 재미있게 처리해 놓았다. 신이한 옛 기록을 일소에 붙여버린 그의 「처용」 시는 비꼬기의 변용으로 분류될 수 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예를 들어서 신라인들의 삶과 노래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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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통신대학교, 『고전시가강독』,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신재홍, 『향가의 연구』, 집문당.
양희철, 『고려향가연구』, 새문사.
국어국문학회편 『고려가요 악장연구』, 태학사.
박노준, 『향가여요의 정서와 병용』, 태학사.



천선자 2010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도시의 원숭이』,『파놉티콘』. 리토피아문학상, 전국계간지작품상 수상. 《리토피아》 부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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