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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계간평



백인덕 (시인)





1.
보들레르의 치열하고도 도저한 명제, “자기는 자기의 사형집행인이고 동시에 사형수다.” 우리는 태어났고, 생명의 그 축복과 함께, ‘죽을 운명’이라는 불가피한 징벌을 수락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늦은 저녁의 스산한 골목길을, 카바이트 불빛이 사라진 포장마차를, 헌 자전거와 살 부러진 우산을, 길 가운데 멈춰서 나를 올려보는 어린 고양이를, 쪼그려 앉아 검은 눈망울을 망연히 들여다보는 나의 늦은 귀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뭐래도 시는 이 ‘삶’의 애잔한 기록이고, 비록 역시의 거대한 물줄기를 돌리고, 노회老獪한 닭들의 모가지를 비틀지 못할지라도 그래서 매 순간은 시고 시를 창조한다는 것은 결국 ‘시답게’ 사는 것임을 또 한 번 명심할 수밖에 없다.
박일 시인은 인천의 「송림동 골목길」을 “무의식의 내면으로 들
그리운 것들의 뒤를 살피다
어가는/ 또 다른 길”의 초입으로 우리의 동행同行을 권유한다.


꼭 한 사람만이 지나갈 수 있어
그 길을 걸어 봐
그 길로 들어서면
침묵을 닮은 그림자가 늘 따라오며
말을 걸어
어둠 몰래 유리문을 열며 속삭이지
어깨를 쭉 펴고 걸어 봐
외면하며 돌아가는 사람에게 절대로
매달리지 말고
흘러가는 시간에 발이 걸려
넘어지지 말고
이 골목을 지나가
그림자를 부축해 주는 연습을 하며
빨리 지나가
골목길 끝에는 무의식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또 다른 길이 보여
그 길로 꼭 가봐
눈물이 빗물이 되어 흐르더라도
돌아보지 말고 똑바로 걸어가
한 사람만을 위하여 걸어 봐
그 사람이 보일 때까지


                                                                                                       ―박일,「 송림동 골목길」 《( 아라문학》 2017, 봄호) 전문


이 ‘골목’을 지나가는 것을 시인은 일종의 ‘통과제의’로 제시하고 있다. 모든 통과제의가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고, 그 상징은 한공동체 안에서 일종의 규약처럼 지금껏 부과되었던 금기를 스스로 위반할 수 있는 자율성은 부여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문화적 기능을 갖는다. 송림동이든 대림동이든 “침묵을 닮은 그림자가 늘 따라오며/ 말을 걸어”오는 골목길 하나를 지난다고 해서 ‘뭐 대수냐?’ 가볍게 코웃음을 칠 수도 있지만, 존재는 때로 사소한 행위, 별다를 것 없는 공간에서 현현顯現하곤 한다. 시인은 이를 잘 포착한다. 이 통과제의는 바슐라르식으로 표현하자면 ‘반향反響’에서 ‘울림’으로 ‘침묵과 말’이 변환하는 존재론적 사건을 함축할 수 있는데, 우리는 밖으로 나가 흩어지는 말이 아니라, 자기 ‘내면’으로 되돌아와 깊이 공명하는 ‘소리’에 제 생의 리듬을 맞춰 춤출 수 있게 된다. 이 사건이 놀라운 점은 모든 시가 지향하는 것처럼 부여된 ‘의미’, 즉 축자적 이해를 초월하는 새로운 가치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은가? “한 사람만을 위하여” 걷는 송림동 골목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유일한 장소, 또는 생의 한 지점으로 결정結晶된다. 우리는 그 결정을 수집하는 가난한 수집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박일 시인은 골목길로 초대하지만, 우대식 시인은 ‘떠나는 자’의 슬픈 포즈와 마지막처럼 흔들리는 배려를 통해 이 ‘통과제의’를 다시 형상화하고 있다.


파울 첼란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었던가
아름다운 시절은 흩어져 여자 등에 반짝인다고
시선을 거둔다
운명이란 최종의 것
정선 강가에 밤이 오면
밤하늘에 뜨는 별
나에게 당신은 그러하다
성탄절의 새벽길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기찻길 옆 제재소에서는
낮은 촉수의 등이 켜지고
이미 오래전에 예언한 미리가 사라지는 것들을 받아내고 있다
선명한 모든 것을 배반하며
산기슭으로 흐르는 눈발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그리는 일은 또 언제나 부질없다
가끔 당신을 생각한다
생각하며 밥을 먹는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밥을 남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사랑이다
                                                                                                  ―우대식,「 정선을 떠나며《」시인동네》(2017, 6월호) <2013년《 시와표현》,
                                                                                                                                                                                                 가을호 작품 재수록> 전문



시인은 “이미 오래전에 예언한 미래가 사라지는 것들을 받아내고
있”는 ‘성탄절의 새벽길’을 떠올리면서 밥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남
기는 것으로 사랑의 모든 언어를 대신한다. 여기서 남겨진 아주 적
은 양의 ‘밥’은 일종의 통과제의 후 먼저 간 선조들을 위해 허공에 뿌
리는 일종의 고수레 같은 것인데, 우리는 미래를 선취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지만, 사실 끊임없이 과거를 소급하고 미래를 기대라
는 이름으로 소환하면서 현재를 과거인 듯, 미래인 듯 살아갈 뿐이
다. 어찌 보면 이 비정함이 우리가 시를 쓰게 되는 내적 동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인은 ‘정선 강가’라는 외지고 한적한 곳에서 “밤하
늘에 뜨는 별”에서 ‘당신’을 불러낸다. 마치「 별 헤는 밤」의 윤동주처
럼 애잔한 소회의 한 자락을 펼친다. 우리가 그리운 것들에게 끝내
가 닿지 못하는 이유는 ‘마지막 사랑’처럼 그리운 것은 결국 ‘그리운
것으로’ 남아야 하기 때문임을 비정하게 확인시키고 있다.

2.
지나치게 비감悲感에 사로잡혀 일말의 희망도 없는 것만이 시의 본령인 것처럼 호도하지 않았는지 염려가 앞선다. 하지만 ‘낙담하지 마시라, 희망의 물동이’ 하나를 거뜬하게 다 채우는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어머니, 어머니
샘물가에서 물동이로
물을 기를 때


물동이에 가득 채운 물
머리에 이고 가기 전
넘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물동이 주둥이를 손바닥으로
슬쩍 훑어내듯이


오늘 내가 너에게
주는 마음은 잘람잘람
그렇지만 넘치지 않게


오늘 내가 너에게
주는 시도 잘람잘람
그렇지만 넘치지 않게


                                                                                                                     ―나태주, 「그렇지만」 《아라문학》 (2017, 봄호) 전문


앞에서 우대식 시인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남기는 ‘밥’을 그의 ‘마지막 사랑’이라고 선언했지만, 나태주 시인은 “물동이에 가득 채
운 물”이 넘치지 않게 하기 위해 “물동이 주둥이를 손바닥으로/ 슬쩍
훑어내는”, 즉 그 손바닥에 담긴 가족에 대한 깊은 배려와 항심恒心
을 위대한 그러나 ‘넘치지’ 않는 사랑의 전형典型으로 그려내고 있다.
‘잘람잘람’처럼 어휘를 조형造形하는 능숙하고도 우아한 태도에서 시
인의 연륜을 느낄 수 있어서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드는 작품이었다.
나태주 시인이 차분하고 능숙하게 그리운 것들의 이면裏面 한 자
락을 끄집어냈다면, 우동식 시인은 직접적으로 ‘감씨 하나’를 통해
‘우주의 배꼽’을 형상화하고 있다.


감을 먹다가 감씨 하나를 깨물었다
거짓말 같이 절반으로 쪼개졌는데
접사해 놓은 것 같은 떡잎이 눈을 번쩍 뜬다
아뿔사! 집 속의 집
가장 깊숙한 사랑의 호흡법
자세히 보니 감나무 한 그루
다소곳이 서 있다
우주의 집중으로 만든 이 감개무량한 보물
감로를 받아먹은 듯
하얀 떡잎이 약숟가락이다
마음의 밭에 새겨 놓은 태반 속 나의 아바타
마지막 기도가 끝나면
베일이 벗겨지고
감춘 것이 드러나겠지
떼어 낼 수 없는 이 모성
아가야 다시 봄이 오고 있다
눈의 길이 멀구나
네 세상을 걸어라


                                                                                                                ―우동식,「 사랑의 씨」 《( 아라문학》, 2017 봄호) 전문

마치 헤겔의 ‘씨앗의 의지Will of Seed’를 한 편의 작품으로 형상화한 듯한 규모와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시인은 그 감씨를 “우주의 집중으로 만든 이 감개무량한 보물”이라고 칭한다. 우리가 만 권의 역사서보다 한 편의 감동적인 시를 더 선호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떼어낼 수 없는 이 모성”을 이성으로 논리로 설명하자면, 숱한 시간과 논거가 동원되어야 하지만, 이렇게 시는 집약된 생명의 한 줄로 그냥 보여줄 수 있다.
이인성 시인은 “문득 깨어난 새벽. 외로웠던 잠// 모두가 다른 얼굴로/ 계절이 익었다”며 「불면증」(《아라문학》, 2017 봄호) 전문)의 고통을 호소하지만 우리는 그 마저도 ‘그리운 것’으로 남겨두면서 새벽 한 길을 걸어가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파인 김동환 선생의 시처럼 시는 여전히 희망의 ‘찬물 한 바가지’가 되어줄 것이다.




백인덕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끝을 찾아서』, 『한밤의 못질』, 『오래된 약』,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단단斷斷함에 대하여』, 저서 『사이버 시대의 시적 상상력』 등.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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