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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신작시



윤정구



제2의 복음



죽는다는 것은 가장 확실한 구원이다


네가 베란다에 열심히 가꾸는 꽃들보다
책을 읽다가 문득 듣게 되는
새벽 종소리보다


문득 천둥처럼 우르르 선고하고
벼락처럼 집행하는 죽음들은
탄생만큼 신선하다


결국은 탄생과 등가인 죽음이
시침처럼 돌아온 북두칠성이
신비한 이불을 덮어준다


죽어 별이 되었다는 까마득히 많은 조상처럼

혼자서 떨어져 캄캄한 바다에의 항해를 끝내고


마침내 방학이 끝나고 숙제 정리하는 아이처럼
내가 내 길의 운행을 멈추고
문득 돌아갈 은하수를 보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냐?


그 후 다시 나의 발자국들을 뒤돌아본다면
이리 삐뚤빼뚤 가볍게 걷지는 않았으리라고
그는 밤마다 야고보를 불렀다







비파형 동검
―아리따운 손길이 빚어내는 악장樂章이 그리웠다





전쟁터에 나아가 와와 함성을 지르면서도
문득 두고 온 사람이 떠올랐을까
상대를 쳐들어가 죽이고 뺏는 무기가 아니라
나를 믿고 기다리고
인애하는 사람들을 지키는데 쓰리라는


비파형 동검 앞에 서면
흰 옷을 입고 씨를 뿌리던
이 땅의 사람들이 꿈꾸던 이상
홍익인간을 떠올리게 된다
결코 우연이 아닌 것처럼


까마득한 날의 대가야
구릉보다 높은 무덤 옆 오솔길
소나무 전나무 참나무 병정들
사이좋게 섞여서 흔들리며 흔들며
큰 산을 오르고 있다


결국은 적도 없고 승패도 없는
덧없는 병정놀이라고
동검을 팽개친 나무 그림자들이
모든 적멸을 뛰어넘는
산 그림자 기운 왕릉의 저녁 무렵


동검을 녹여낸 비파소리가

저무는 대가야의 하늘에 펼쳐진다
고함 대신 맑고 청아한 곡조가
산등성이 집들을 가볍게 넘어 간다
새털구름이 꽃자주빛으로 다시 붉었다







윤정구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눈 속의 푸른 풀밭』, 『햇빛의 길을 보았니』, 『쥐똥나무가 좋아졌다』, 『사과 속의 달빛 여우』. 산문집 『한국 현대 시인을 찾아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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