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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김구용시문학상 수상자가 선정되었다.


<수상자>
장이지 시인


<프로필>

1976년 전남 고흥 출생. 200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박사 과정 졸업. 시집으로 안국동울음상점(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연꽃의 입술(문학동네, 2011), 연구서로 한국 초현실주의 시의 계보(보고사, 2011), 편저로 이수복 시전집(현대문학, 2009)이 있음. 제4회 바움젊은시인상(2012) 수상. 현재 성공회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음.



<수상시집>
'연꽃의 입술', 문학동네 발행)

<시상식>
2012년 2월 25일(토) 오후 5시

<시상식장>
수림공원 별관(인천 간석역 앞)

<후원>
인천신문사, 독서신문, 솔출판사, 성균문학회, 행소동인

<본심>
강우식(시인), 박제천(시인), 장종권(시인)

<예심>
고명철(평론가), 고인환(평론가), 권경아(시인), 권정일(시인), 김유석(시인)


<김구용시문학상운영위원>
김동호(시인), 강인섭(시인), 임강빈(시인), 장종권(시인), 구경옥(김구용 시인 가족) 

<김구용시문학상 선정 기준 요약>
김구용시문학상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독창적인 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새로운 시에 대한 실험정신이 가득한 등단 15년 이내의 시인이 이전 2년 동안 발간한 시집 중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하고 있다. 시인 개인의 잠재적인 미래성 평가와 차세대 한국시단의 주역으로서의 가능성이 심사의 주요 기준이다.


독자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작법과 독법

-제2회 김구용문학상 심사평


지난해 제1회 김구용문학상이 제정되고, 그 본심을 맡았을 때 ‘김구용 시인은 일생을 많은 시인들에게 ‘맑은 문학’이 어떤 것인가를 몸소 시현하신 어른이시기에 김구용시문학상도 수많은 상이 난무하는 시단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맑은 시문학상’으로 만들겠다‘는 기준을 세운 바 있다. ‘맑은 시문학상’이 되려면 심의가 공정해서 심의 결과에 누구나 승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김구용문학과 접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어려운 것이 김구용문학과 어떻게 접맥이 되느냐를 가려내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김구용문학은 실험성의 표본이라 할 만큼 형식을 파괴할 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는 동양적 사유의 결정체가 어떠한 것이냐를 보여주는 고도의 정신주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제2회 김구용시문학상 본심에는 여러 우수한 시인들의 작품이 거명되었지만 우리 심의위원들은 수상자 장이지 시인의 ‘연꽃의 입술’이 그러한 김구용 시학의 맥에 가장 합당한 작품이라고 결정하였다. 수상자 장이지 시인은 첫시집 ‘안국동 울음상점’ 이래 독자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작법과 독법을 능청스럽도록 자유자재로 구사해 시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번 시집에는 그러한 실험성이 어법과 화자 전반에 탄력적인 변화를 가져와 서로 다르지만 서로 연결되고 접목되는 장자류의 만물제동을 보여줄 만큼 진경을 이루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시인의 방법론은 시인이 시집의 서문에서 자신을 하나의 필경사로 인식하듯 대자연과 대우주가 빚어내는 황홀한 시를 옮겨적는다는 독특한 관점의 소산일 것이다. 시학의 비의를 찾아내는 이러한 발견자의 자부심은 부분적으로 소통을 방해할 수도 있겠지만 김구용선생이 비밀하게 보여주던 화씨벽의 그 원광을 오롯하게 재현하는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바라건대 이번 수상을 계기로 장이지 시인의 작품이 한층 더 원숙하면서도 풍요로운 결실을 맺어 장차 우리 시문학의 지형도를 바꿀 수 있는 동력이 되기를 기대한다./2012년 임진 원단을 맞아본심위원 강우식 박제천(글) 장종권


<당선소감>

극기의 운동

김구용시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더 늘었습니다. 그 상을 받은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저는 믿기 때문입니다. 전통서정과 모더니즘이 경합하던 1950년대, 김구용 선생님은 그 어느 쪽으로 보아도 이질적인 장시들을 내놓음으로써 우리 문학사의 경이적인 한 페이지를 장식하셨습니다. ‘꿈의 이상’, ‘소인’ 등을 처음 읽었던 순간을 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 그것은 농후한 실존주의 작품으로 제게 각인되었습니다. 그 작품들은 도대체 ‘나’란 누구인가 하는 열병을 제게 심어주었습니다. 시인데 가냘픈 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는 그것들이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진 몽상처럼 여겨져서 더 이상 읽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기도 했습니다. 대학원생이 되어 ‘구곡’ 연작을 읽고 나서는 제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김구용 선생님의 존재 탐구는 유아론으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고, 세계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곡’, ‘구거’ 연작의 ‘9’라는 숫자가 어떤 완벽성이나 완결성을 함의하는 것이라면, 1930년대 김기림·임화 논쟁 이후 중단된 총체성을 지향하는 어떤 시의 실천이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시가 지극히 감각적인 것으로 왜소화한 오늘날, 김구용 선생님의 ‘육식(六識)을 넘어서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불교적인 비전’은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현대시에 있어서 새로움에 대한 추구는 궁극적으로는 차이에 대한 욕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2000년대 시인들의 차이에 대한 욕망은 시의 장르적 가능성을 상당히 넓혔지만, 한편으로는 ‘차이의 차이’가 범용한 것들의 대량생산으로 이어지는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누구나 비슷한 질료로 비슷한 문장들을 양산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의 깊이나 감동, 타자에 대한 이해보다는 시의 표층을 미끄러지는 ‘언어의 곡예’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쳐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언어의 곡예가 결국에는 문학에 거는 독자들의 기대치를 낮춤으로써 좋은 문학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을 침식해가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 시 쓰기는 그러한 새로움과 다른 것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제 시 쓰기는 현실과 부단히 마찰하면서 바로 직전의 저 자신의 세계를 갱신함으로써 얻어지는 ‘극기의 운동’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김구용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는 자세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김구용시문학상이라는 이 뜻 깊은 상은 사실 제게는 과분한 상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 상은 분명히 그 이름에 값해서 제게 주어진 상이 아니라, 이 상의 위의에 걸맞은 사람이 되라는 과업의 의미로 제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제게 무거운 기대를 걸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뜻을 올립니다. 미래의 지음(知音)보다는 같은 시대를 함께 숨 쉬고 함께 아파하는 지음을 얻기 위해 부단히 정진하는 시인이 되겠습니다./2012년 1월 수상자 장이지


<작품 소개>

어떤 귀소(歸巢)



해삼위(海蔘威) 부근 상설시장

누비 구름 누덕누덕 걸린 하늘,

두만강 가는 길 묻고 다니던

꽃제비 한 아이

이국의 장날을

썩은 감자껍질 같은 것이나 줍느라

진종일 바장대다 길 위에 눕고

고려인 장사치가 호떡을 가져왔다 잠시

집으로 가는 후줄근한 꿈 여행을

들여다보고 앉아 있었다.


밤물결 소리도 귀에 먼

해삼위 부둣가 낡은 집

전쟁 통에 가족들 뿔뿔이 흩어져

중원의 모래바람으로 아무렇게나 살다가

이제는 까라져 가죽만 남은 노인이

코리아의 호드기 소리를

난청으로나 듣는 밤,

민족이란 말도 요새는 없다는데

고국산천에 쓴 무덤의 냄새는

꿈에서 더 간절하기만…….

돌아가기는 갈 것이다.

그러나

이 몸을 다 갈아 없애고서야.


아리랑―

분노는 차가운 땅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내 얼리고

고독은 막걸리 항아리에 함께 담아라.

설움은 행랑방에 주저앉혀 짚신이라도 삼게 하고

그리움은 아무래도 잔월효성에게나 떠넘겨야 하리.


장사치를 따라 우수리로 밀려 온

꽃제비 도토리묵 먹던

접시에 기러기 울어 예며 날았다.

걸핏하면 잘 울었다는 저 박용래의 어느 시에서처럼.

탈북 하여 떠돌다 아버지 병들어 죽고

모친 있는 고향으로나 돌아가야 한다고 보채다

밤사이 인사도 없이 떠나다, 꽃제비여!

연해주의 모든 길을 허리띠에 묶고 질질 끌면서

마침내는 어머니에게로 갈 까마귀 같은 아이.

연해주의 찬 하늘에 가족 잃은 설움을 밀어두고야

짓무른 꿈을 베갯잇에 적시는 노인.

아리랑은 유형(流刑)의 노래던가.

고려인 장사치가 치켜다본 새벽하늘엔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둥근 달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눈부신 흰 머리로 짜낸

정안수 그릇으로 아슴하기만.




굳세어라 금순아․1

―국제시장 1955, 눈꽃



국제시장 입구

오망이 꿀꿀이죽 무쇠 솥 위로도

허기진 눈꽃이 풀풀 날리느니,

먹어도 배가 채워지지 않는 밥이 내리느니.


금순아, 하늘에 파랗게 언 네 얼굴.

바다에 살얼음 깐 거울을 보고 있느냐.

흥남 부두 엘에스티 고동 울리는데

빙경(氷鏡) 속에서 돌꼇잠을 자는 시간이여.


울어도 울어도 시원해지지 않는 검은 바다.

얼어서 검어진 네 손에 입김을 불던

오라비를 찾느냐.

그 꽝꽝한 거울 속 눈보라를 헤치며, 헤치며.


파도가 살갗을 에는 바다에 너를 버리고

삼팔따라지로 구르고 굴러

국제시장이다. 달러 장사치이다.

쪽을 찐 호남 안깐을 너처럼 안고 숨죽여 울던 밤이여.


가늘한 허리의 안깐을 보면

울컥 일던 대설원의 눈보라여.

대구나 광주, 너 어디 살아있는 게 아니냐.

엄동설한을 마른 풀로 헤매었더냐.


씩씩거리며 멧돼지 숨을 쉬던 술판도 숱했다.

치받고픈 타향살이, 눈꽃 너머 장진 부근을 더듬느니.

그래, 눈꽃의 훈훈한 살결로

너 웃으며 장진에도 내리느냐. 쌓이느냐.




굳세어라 금순아․2

―파줄기처럼 매운 길 1960, 서울



눈매 서글서글하고 풍신 좋은 남정을 따라

산으로만 재우쳐 얼었던 밤, 눈물나우다.

중공군 꽹과리 소리 오금 저리고

언 발 끌며 걸은 길 파줄기처럼 맵더이다.


남정네 서산을 가는 새 되어 뜨고

양파알처럼 떨군 아이 등에 업고

미싱을 돌리고 날품을 팔고

드난을 살아도 서울 하늘은 맵기만 하오.


오라바이, 간밤 꿈에 만났쟁이오.

학업을 이었으면 대학을 앙이 나왔갔나.

학사모 쓰고 검은 옷 입고

내 손을 쥔 손 놓지 않고 장진으 가겠쟁이.


하늘도 이념이 달라 넘질 못하는

휴전선, 구름도 덜컹 넘어야 하느니.

그래, 꿈도 가다가는 가물어 목 끝이 타는 검은 방

오라바이 냄새 훗훗이 떠돌고, 곤한 아이 숨소리.


서울의 봄, 개나리 피었다 지는 4월이여.

어깨에 옥양목 빛 날개를 단 학생들이

밀려가다가는 썰물 지는 오후.

피 흘리는 어깨를 움켜쥔 나 어린 오라바이를 보겠네.

날개 찢긴 나비 깃들이어 오는 소리.

흉악한 세상이오, 얼피덩 들어와 숨기오.


울 오라바이라면 얼매나 좋갔나.

바다도 새카맣게 질린 흥남 부두에

눈보라 채찍으로, 채찍으로 날리던 날,

내 쥔 손을 왜 놓았는지 묻지도 않고

개마고원의 그늘 같은 마음에 꼭꼭 숨겨드리리.

이념이 와도 모르고 독재가 와도 모르게시리.


상처에 좋은 곰국 손수 끓여

내 이남살이의 파줄기 같은 설움도 숭숭 썰어 넣겠네.

어리신 오라바이는 신고산 타령을 불르우다.

아바이 태가 나나 봅새.


죽지 않고 산다면.

죽지 않고 어딘가 산다면.




굳세어라 금순아․3

―뜬 배 1983, 타령조



찻머리에 거룻배 떠간다.

버스는 아니 오고 너를 태운 배가 흘러간다.

너는 오십줄 오망이 얼굴을 닮았었구나.

설마 함경도 사투리도 다 잊어뿌리고 가느냐.


“오라비를 많이는 기다렸싱께.

돌이 되았는갑드라. 암이었다카지러.”

금순아, 개마고원 머리에 얹힌

흰 눈의 소복을 입고 너 어디에 가느냐.


좀 더 기대리쟁쿠, 너의 손을 주라.

너의 거멓게 언 손을 주라.

전단을 뿌리고 신문광고를 내고 테레비에도 나갔다.

전라도를, 충청도를, 강원도를, 여의도를 사무친 바람.


이마에 검정 사마귀 있는 안깐을 찾았다.

금순이를 찾았다. 살았다니 멈출 줄 모르던 마음이여.

갈증의 야반, 수화기 저편에서 울던

황해도 처니의 울음고비를 어디 다 넘갔나.

네가 아닌데도 울음이 터졌다.

네가 아니어서 울음이 터졌다.


동명이인을 만났다.

고향사람도 만났다.

그리고 너를 아는 사람을 찾았다.


“조카가 있지러.” 옛꼬망?

중동에 가 있다고 했다.

조카는 붉은 혀에 흰 모래가 박히도록

울지 않았겠느냐, 좀 더 기대리쟁쿠.


너는 거룻배를 타고 떠간다.

장진호에 깃들인 이마 하얀 별은 너의 별.

인제는 너 다 보겠구나.


오십줄 오라바이의 망이는 가문 손이며,

너를 놓은 부끄러운 손이며,

타국 땅 모래바람 속

푸른 작업복들을 입은 코리언,

늬가 조카를 찾을까.


어랑 어랑 어허야

어야 디야 내 사랑아.

공산야월 아바이 타령 소리.

두견 두견 오망이 잔기침 소리.

고향산천을 다 보겠구나. 망이는 변했갔지?

큰 산이 전설같이 떠오르고 둥주리 튼 마을,

울렁거리는 함경도 사투리의 아이들 지줄거림…….


어랑 어랑 어허야 어야 디야.

너의 차가운 손을 주라.

네 손을 잡은 손 두 번은 놓지 않으리.

놓지 않으리.




‘좀삐’의 여인들

―종군위안부의 넋이 ‘당신’에게



‘좀삐’에 눅진한 비가 내린다.

열대 우림 속에선

부리가 크고 긴 괴조(怪鳥)가 온종일 울어댄다.

문턱에 선 거대한 팰루스의 그림자.

다다미방에 이불이 한 채,

몸살이 눅눅하게 웅크린다.


가족을 죽인다고 해서 온 여자도 있었다.

속아서 따라온 여자도 있었다.

가난에 팔리고, 동족에 속고,

전쟁이 까맣게 먹어치운

이름도 없는 여자들이 있었다.


마마상이 군표를 챙기고

담배를 피워 문다.

일본도를 차고 군화를 신은 야수들이

하얀 지옥을 자꾸 파먹는다.

파먹는데도 죽을 수가 없어서 기절한다.

열대우림의 미지근한 비가 치적치적 침을 뱉는다.


폭격의 와중에도

안기러 오는 원숭이들이 있었다.

고참에게 딸려 와 열여덟 동생의 얼굴로

범하고 간 젊은이를 용서한다.

하루에 열 명, 아니 그 이상,

죽음을 등에 업은 벌거숭이들이

두려움으로, 두려움으로 파고 들어간 날에도

죽을 수가 없어서 까무러친 ‘좀삐’의 여인들.

어디선가 엉겅퀴 달이는 냄새가 난다.


전신(戰神)의 아이들이 흐물흐물한 핏덩이로 쏟아진다.

음문 속으로 독거미들이 들어와 온 몸에 독이 퍼진다.

일본도가 아랫배에 상처를 내고 간다.

린치가 말라리아 모기처럼 앵앵거린다.

생리혈이 멈추게 하는 수술실의 메스,

제국주의의 포신이 서서히 움직인다.


문득 우기가 지나고 다시 우기가 오고.

구멍 뚫린 천장으로 하늘의 별이 떨어지고

남자들의 전쟁이 끝나고

역사가 불태워지자

아지랑이가 되었다, 몸이,

엉겅퀴 달이는 냄새가 아직도 나는데

용서할 권리마저 없이

아지랑이가 되었다.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는데,

다다미방에 이불이 한 채.

무너진 천장으로 쏟아지는 별빛에도

몸살이 날 것 같은데,

여기는 어디인가.

내 이름은 무엇인가.

당신이라면

모든 것을 말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당신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