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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an1.jpg

 

계간 리토피아(주간 장종권)가 주관하는 제5회 김구용시문학상 수상자가 지난 2월 초 실시된 심사(심사위원-장종권, 권경아, 김중일, 남승원)에서 김안 시인(시집 미제레레, 문예중앙 발행)로 결정되었다. 김구용시문학상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독창적인 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새로운 시에 대한 실험정신이 가득한 등단 15년 이내의 시인이 발간한 시집 중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하고 있다. 시인 개인의 잠재적인 미래성 평가와 차세대 한국시단의 주역으로서의 가능성이 심사의 주요 기준이다.

 

김안(본명 김명인) 시인은 1977년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2004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시집으로 오빠생각, 미제레레가 있다.

 

제1회 수상자는 권정일 시인, 제2회 수상자는 장이지 시인, 제3회 수상자는 김중일 시인, 제4회 수상자는 김성규 시인이었다. 상금은 300만원이다.

 

자생적 담론으로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계간 ≪리토피아≫의

제5회 김구용시문학상

 

수상자 : 김안 시인

수상시집 : 미제레레(문예중앙 발행)

상금 : 300만원

시상식 : 2015년 2월 28일(토) 오후 5시

시상식장 : 수림공원웨딩홀부페 별관(인천 간석역 부근)

심사 : 권경아(문학평론가), 장종권(시인), 김중일(시인), 남승원(문학평론가)

김구용시문학상운영위원

김동호(시인), 강인섭(시인), 임강빈(시인), 장종권(시인), 임우기(평론가), 구경옥(유족)

 

심사평

삶의 진정성을 향한 투명한 언어

김구용시문학상은 2011년 김구용 시인의 시정신과 문학사적 위상을 기리기 위하여 제정되어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독창적인 세계를 추구하며 새로운 시에 대한 실험정신을 지닌 시인을 선정하겠다는 기준을 공표한 바 있다. ‘맑은 문학’을 실천으로 보여주셨던 김구용 시인의 뜻에 걸맞는 ‘맑은 시문학상’으로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진 김구용시문학상은 어느덧 5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5회 김구용시문학상에 시집 미제레레의 김안 시인이 선정된 것을 특히 기쁘게 생각한다.

심사위원들이 김구용시문학상의 제정 취지와 선정 기준에 부합하는 시집들을 선별하여 2~3권씩 추천하였고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김안 시인의 시집 미제레레를 수상작으로 최종 선정하였다. 미제레레는 심사위원 모두에게 추천을 받아 만장일치로 김안 시인이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미제레레는 허위와 위선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슬픔과 고통을 생동감 있는 언어로 보여주며 삶의 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는 시집이다. 황폐한 현실에서 이제는 잊혀진 이름이 되어버린 삶의 진실을 찾아 헤매는 시인의 절규와도 같은 목소리가 아름다운 것은 진정한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무엇이 사람다운 삶인지를 꾸밈없는 자신만의 언어로 묻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악몽만이 가끔 진실”이 되는 현실이라 하더라도 세계를 향해 보편적인 삶의 가치, 진정한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를 소리 높여 외침으로써 황폐화된 현실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미제레레는 꾸밈없는 언어로 현실을 직시하며 세계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이론과 사상이 흘러 넘치고 있는 이 시대에 김안의 언어는 존재의 진정성을 향한 독창적인 언어적 실험을 보여줌으로써 김구용시문학상이 기준으로 삼았던 ‘독창성’과 ‘실험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김안 시인은 “투명해지기 위해 마지막까지”(「우리의 물이 가까스로 투명에 가까워졌을 때,」) 노래를 부른다. “투명의 무늬들”을 찾는 그의 투명한 언어는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절규이며 또한 ‘맑은 문학’을 추구하는 시인의 몸짓이라 할 수 있다. 김안 시인의 투명한 몸짓이 새로운 시의 가능성이며 문학의 진정성이라 믿는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2015년 2월

심사위원 : 장종권, 권경아, 김중일, 남승원.

 

수상소감

불가능한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라는 따끔한 충고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시를 쓰는 일은 기도 끝에 남겨진 여죄를 쌓아가는 일만 같습니다. 그것은 저의 무력함과 무관심과 창백함들에 대한 변명이기도 합니다. 제 안에 이런 죄의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가족을 돌아보는 일이 더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이 수상으로, 그 고통의 우물이 한 바가지쯤은 가벼워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상은 제가 받는 것이 아니라, 제 쓰기의 나날들을 지켜주고 보듬어온 제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제 딸이 받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랫동안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습니다.

김구용의 시는 개인을 압사할 만큼 거대하고 단단한 현실 앞에서의 실존적 몸부림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 고통이 더해올수록 김구용의 시는 ‘시’의 몸을 뭉개기 시작했고, 이 뭉개진 몸의 흔적들이 ‘중편산문시’라는 형식을 통해 발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뭉개짐은 현실에 압사한 흔적이 아닙니다. 식민지와 전쟁으로 이어지는, 숨조차 편히 내쉴 수 없는 현실에 대응하기 위하여, 부러 자아를 분해하고 해체한 것입니다. 김수영이 하나의 온몸으로 싸웠다면, 김구용은 찢겨진 몸의 수많은 조각들로 싸웠습니다. 시의 몸이 뭉개져 있기 때문에 시의 사지는 엉뚱한 데에 붙어 있고, 때론 피가 분출하고 있고, 때론 싸늘하게 식어 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김구용의 시는 난해하다고 인식되고 있습니다. 김수영에 의해 붙여진 ‘난해의 장막’이라는 이 딱지는, 이 두 사람이 보여주는 현실 대적 방식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둘은 1950년대 시단의 양극단에 위치하고 있는데, 김수영이 단 하나의 온몸으로 노래하다 산화했다면, 김구용은 찢겨진 몸을 거름삼아 종국엔 내가 없는 불교의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이 거대하고 불가항력적인 세계와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한 답이 바로 이 두 극단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시는 그 어디쯤에서인가 헤매고 있습니다. 양손에 부끄럽기만 한 두 권의 시집을 들고서 황망하게 두리번거리고 있습니다. 이 수상은 이제 양손을 자르고 더 깊숙이, 불가능한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라는 따끔한 충고인 것만 같습니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시가 써지지 않을 적마다 찾는 책들이 있습니다. 첫째가 이상의 소설과 산문이요, 둘째는 김구용 선생의 시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쓰는 약력에 ‘김구용’,이라는 이름을 적어놓게 되었습니다. 한 편 한 편 시를 쓰고 약력을 적을 때마다, 이 이름 앞에서 멈칫, 하게 될 것만 같습니다. 이 이름 앞에 부끄럽지 않게 쓰겠습니다. 이 과분한 이름을 약력에 넣도록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 십 년이 넘도록 함께 시의 길을 가고 있는 동지들, 부족하고 우매한 저를 거두어주신 인하대학교 은사님들과 동료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더 이상 시를 쓰는 일이 죄가 아니도록, 더욱 이 현실과 싸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2월

수상자 김안

 

 

작품-미제레레 중에서

미제레레

 

 

내 모든 삶이 만약이라면,

이 세계가,

매일 내가 먹어야 하는 알약의 개수를 헤아리는 이 저녁의 세계가

집 앞 놀이터 시소가 밤마다 저 혼자 움직이는 것처럼

반디불이인양 외진 골목마다 피어나는 담뱃불,

한껏 나빠지고 싶던 시절 담뱃불을 손목 위에 지지며 다짐하던 헛된 약속들처럼

만약이라면

어떤 혐의들로부터도 패악들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허물어진 얼굴을 양손에 받쳐 들고 서서

오, 아무 인생이 없는 기쁨이여

세상의 모든 중심을 향해 흩어졌던 나의 신들이 결국 길을 잃었구나

애도할 수 있을까

오늘밤은 머리 위로 펼쳐진 속죄의 목록들이 무척이나 아름답구나

존재하지 않는 짐승과

사라져버린 사물과

죽은 영웅의 세계가 창백하게 얼어붙어 있구나

똑, 똑,

손가락을 분질러 밤의 입술을 칠해주면

옛날의 전쟁들이 다시 시작될까

옛날의 죄가 다시 반복될까

밤에 휘파람을 불면 머리맡에 뱀이 똬리를 틀다 나를 물어가고

밤에 손톱을 깎아 창밖으로 내던지면 나를 닮은 짐승이 내 대신 눕고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저 눈을 가리고서 밤을 헤매는

선량하고 헛된 낮의 내면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누구의 내면이 나의 입으로 당신에게 고백할까

여보, 고백하는 입마다 빛나는 알약이 쏟아져요

이 알약을 당신의 입술로 받아 주세요

빛나는 어둠이 몰려와 이 작은 창을 가리는구나

그런데 밤새도록 내 고백의 시체를 뜯어먹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오늘밤엔 속죄의 시간이 부족하구나

창밖에

저렇게 빛나는 약들을 헤치며

피로와 계절과 어제 죽인 벌레와 화초들이 떠가는구나

 

 

 

 

사람

 

 

당신이라는 육식에만 힘쓸 것이다,

입 앞에 놓인 말(言)들만 게걸스럽게 먹을 것이다,

하면

나는 이타적인 사람입니다.

음절을 늘리듯

혀를 늘려 땅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는 개구리마냥

입이라는 장애를 포기하겠다,

하면

나는 유능한 사람이겠지요.

그래서 내 울음의 몽리면적은 허락될 리 없습니다.

사람,

저녁이 오면 퇴근을 하고, 퇴근을 하면 취합니다.

취하면 당신이 내 손을 잡아주시겠습니까?

이 손은 잡자마자 폐허입니다. 몸이라는 테두리도 사라지겠지요.

왜 사람이어야 합니까,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든 것이.

왜 군중들은 범죄자에게

네가 사람새끼냐,

라고 외칩니까, 언제 한 번 사람인 적이 있었다는 듯이.

그들을 향해

노동하는 시체,

라고 말한 이는 아직 살아 있습니까?

이곳에서 만족하려면 쥐새끼보다 더 쥐새끼가 되어야 하지,

라고 말한 이는 쥐새끼입니까?

아직도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을 묻지 못하고

나는

다리 사이

포낭 속 모든 씨에

검정 꼬리가 생길 때까지

자위하고 확인할 뿐입니다

가장 소란스럽고 가장 사나운 평화 속에

강은 썩은 모액(母液)으로 가득하고

나의 병은 더 이상

자라나질 않습니다.

 

 

 

 

서정

 

 

살과 살―

우리는 서로에게 쏟아지며

완성된 감옥이라면,

어제의 말, 오늘의 말, 우리의 눈동자를 깨뜨리며 닥쳐올 말이

이 모든 말의 합이,

우리에게 일어났던 끔찍한 말의 기적들이

가을 들판에 일렁거리는 붉은 꽃, 그 붉은 꽃의 사납고 부드러운 이빨, 그 이빨을 뜯어먹는 시간의 붉은 아가리라면

들리지 않는 말, 들려오는 말, 기억되지 않는 말이

이 모든 말 ; 우리가 내는 모든 소리들의 합이,

그 소리가 만드는 액체들이

기억에 갇힌 채 귀를 막고 가라앉는 사랑이라면,

살과 살―

그것은 온통

피로 씌어진 언어의 화살*,

서로의 감옥 속으로 쏟아져 들어와

모든 말이 없어질 때까지

서로의 입을 찢는,

찢긴 입속으로 익사하며

기어코

기억이기를 단념하는,

* 김남주, 「길」에서

 

 

 

 

복화술사

 

 

당신이라는 쓰기로 도망쳐왔던 울음들이,

그 울음들 바깥으로 기어 나오는 벌레들을 눌러죽이던 밤들이,

끝없이 맴돌던 그 밤의 후렴들이 편지합니다.

사람의 길을 걸어야 했던 주름과 신음의 나날을 지나

편지는 달려와 인사를 건넵니다.

당신이라는 쓰기의 바깥에서 서성이는 모든 주어(主語)들에게,

주억거릴 머리를 잃은 채 울고 있는 불구의 문장들에게,

사람은 안녕합니까?

주먹 쥐는 법을 아는 순간 나는 주어가 되어 두려움을 배웠습니다,

쓰기의 두려움을, 쓰기 바깥의 당신을, 당신이라는 쓰기를.

공포는 고요하고,

고요에 시달리면 시달릴수록 나는 쓰기에 가깝게 되었습니다.

나는 물질입니까?

마음의 노역입니까?

아니면 아무런 주장도 분노도 결말도 없는 선언입니까?

당신이라는 쓰기 속에서 나는 밤의 두려운 주먹질입니다.

시커먼 손톱 밑에서 밤의 후렴들에 맞춰 춤을 추는 벌레들은,

우울증을 앓던 두 번째 애인이 밤마다 입 바깥으로 내뱉던 얕은 신음과 무척이나 닮았군요.

사람이니, 당신은 주어가 됩니까?

당신이라는 쓰기가 보낸 편지 속에서 밤새 공포의 공장이 돌아갑니다.

편지를 접으니 이 네모난 방이 접히고,

나는 납작해져 당신이라는 쓰기가 보낸 편지가 됩니다.

당신은 밤새

닫히지 않는 눈동자와 푸가를 지나

썩어가는 당신의 천국을 지나

회송될 편지를 쫓고,

나는 밤새 나를 펼칠 당신을 기다리며

돌아올 당신에게 다시 편지합니다.

편지를 펼치면 그 많던 서정과 울음과 이미지들이 사라지고 왜 텅 빈 방만 존재할까요?

나는 깨끗하게 사라진 내 몸을 들여다보며 인사를 건넵니다,

완벽한 복화술로

후렴처럼 울면서.

 

 

 

 

메멘토 모리

 

 

나는 내가 복무하고 있는 이 쓰기가 마뜩치 않네. 언어 바깥에서 존재하는 몽상과 내가 복무하고 있는 쓰기와 쓰기라는 복무함에게 요구되는 윤리들이 맞부딪히는 것. 결절과 관계되어짐과 사람처럼 사는 것이 뒤엉키는 것. 과연 그 이상일까? 내가 자네를 본 것은 이런 생각들을 하며 비틀비틀 밤거리를 홀로 걷고 있었을 때였네. 자네는 흠뻑 젖은 작은 인형을 안고 있었지. 내가 자네의 팔을 붙잡았나? 아니면 자네가 내게 담배를 빌렸나?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자네는 찬 바닥 위에 인형을 내려놓았고, 인형은 희뿌연 연기를 뿜으며 물이 되어 우리의 발밑으로 흘러들었고, 우리의 발은 젖어 들었고, 젖은 채로 우린 같이 긴 시간 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가 일어났지. 귀에서 뚝뚝 물을 떨어뜨리면서. 그게 다네. 그리고 자네는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나는 어디로 온 것일까? 요 근래 전집을 낸 소설가에게 자네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그가 자네의 인형을 꺼내더군. 그리고서 그는 술 한 잔을 비우고 담배를 피워 물더니 연기 속으로 사라졌네. 나는 그가 사라지는 소리를 흉내 내며 그가 놓고 간 자네의 인형을 들고 거리로 나섰지. 나는 나의 쓰기들이 바깥을 향해 열려 있지 못하다는 지적을 되뇌며, 간혹 집 앞에서 보던 새끼 고양기가 어느 날 다리 한쪽이 뭉개져버린 사실에 내가 얼마나 울었던지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지. 나의 쓰기라는 것은 이 싸구려 멜랑콜리와 바늘 하나 들어가지 못할 만큼 굳어져버린 당대의 심장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 중얼거렸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나. 아내 몰래 바람을 피웠었어도, 책방에서 몰래 내 책을 훔쳤었어도 거대한 윤리 앞에서 나는 자유롭지 않은가. 딱딱한 밤 속을 부유하고 있는 수많은 사념들. 인형은 내가 걸으면 걸을수록 무거워졌네. 이 밤 나는 자네의 인형과 말없이 앉아 있네. 그리고 우리의 머리 위로 내가 복무하는 수많은 쓰기들이 붕붕거리네. 그것이 나의 사념인지 인형의 사념인지 쓰기의 사념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나의 쓰기가 완성되는 지점이 공중이라는 것이 마뜩치 않을 뿐이네. 왜 저 공중의 쓰기들이 물이 되어 내 귀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는가? 자네는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나는 어디로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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