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숙.jpg

제1회 아라작품상/김보숙 시인

<수상작> 

해 볼만

 

 

술에 취하면 조기를 구워 발라 먹는 나의 습관은 수산시장에서 조기 한 바구니에 만 원을 외치는 남자들을 보기 위해 만든 습관인지도 몰라. 청량리 수산시장은 조기보다 고등어 파는 남자들이 많아, 강 건너 가락시장으로 가는 밤. 강을 건너 올 때는 가터밸트로 갈아입고 오렴. 성수역 화장실에서 가터밸트로 갈아입던 옳지, 그래야 안 맞지, 강남 사는 남자와 연애하면서 생긴 맷집은 맞아볼 만한 건강함을 주었고. 어때? 자기야 나 건강해지니깐 때려 볼 만하지?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않고 버리는 거란다. 성수역 화장실 변기에 쏟아 버린 조기들. 해볼 만한 폭력.-아라문학 11

 

 

 

 

이상한 날

 

 

아말감에 대해 듣고 있다.

꼬막 까는 알바는 어제 끝났고

입 냄새는 아직도 나는 중이다.

꼬막을 까다가 하, 했고

머리를 묶다가 하, 했다.

그 때마다 냄새가 났다.

네가 사준 실 핀이 문제였다.

실 핀으로 이를 쑤시면

이기 상한다는 것을 몰랐다.

잘 못 쑤시는 바람에 어금니가

썩었고 버릇은 하, 가 되었다.

아말감이면 버릇을 고칠 수 있다고

하는데 꼬막 까는 알바는 어제

끝났다.-아라문학 11

 

 

 

 

그도 그녀도 아닌

 

 

소금 양을 줄여 달라는 엊그제의 메모 밥을 많이 먹은 강아지는 살이 쪄서 그대로 누워 있고 이름을 잘 지어야지 도그에게 피그는 도통 어색해 보통 도그는 해피라고 부르는데 피그인 그녀를 도그라고 부르는 것처럼 도그인 강아지를 피그라 부르고. 소금 양을 줄여달라는 엊그제의 메모 찾아봐도 후추 통 밖에 없는 찬장 밥을 많이 먹은 도그는 피그라고 부를 때 만 뒤를 돌아 봐. 소금을 뿌리다가도 도그라고 부르면 뒤로 해야 해. 그때야 도그는 도그가 되고 피그는 피그가 되고

하루에 두 번 먹던 식욕 억제제를 네 번으로 늘리고 하루에 두 번 먹던 밥이 네 번으로 늘었다. 식욕이 억제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나는 하루 네 번 밥상 앞에 앉는다. 밥을 보아야 식욕이 억제되었는지 알 수 있고 식욕이 억제 되지 않은 저녁은 식욕이 억제되는 것을 확인 할 때까지 밥상을 차린다. 그만 하라며 딸은 울고.-아라문학 12

 

 

 

 

리액션

 

 

우리는 이제 자다가 오줌을 싸지 않아요. 어머니는 기저귀가 싫다고 하셨지. 가끔 오빠가 어머니의 똥 오줌을 손으로 받아내었다. 기저귀 같은 내 아들. 마루에서 떨어지지 않는 건 가족 뿐. 기저귀는 떨어지지 않았다. 컴백은 김흥국 아저씨와 하고 싶어요. 컴백을 위하여 나는 계속 공백기였다. 로마 나이트 여성 전용 무료 쿠폰을 만드는 가내 수공업. 바쁠 때는 기저귀를 갈아 달라고 울던 어머니.-아라문학 12

 

 

신작시

나프탈렌 효과

 

 

양치 컵에 흰 자를 담고

칫솔에 노른자를 묻히고

나는 소금을 사러 간

어머니를 기다린다

목욕 바구니 안에 가득 찬

계란

나프탈렌향이 풍기는

차분한 혼숙

옹알옹알 소리가 좋아

발명한 계란양치

가엽다고 머리를 감겨 줄때 면

삶은 계란처럼 소금이 뿌려지곤

했다

 

 

 

 

마당에 서서

 

 

펌프를 묻고 나무를 심었다. 말을 길어 오르지 못하는 나의 입에선 쇠 냄새가 나곤 하였지만 물을 길어 오를 일 없는 사람들의 손에선 더 이상 쇠 냄새가 나지 않았다. 나뭇잎은 등목처럼 쏟아졌다. 펌프를 묻고 나무를 심은 그에게 잡음 없는 주파수를 선물하기 위해 나는 라디오에 책갈피를 끼워 두었다. 달이라고 똑똑하게 들릴 때까지 주파수를 맞추었다. 달이라고 똑똑하게 말할 때 까지 나는 마당에 서서 말을 길어 올렸다.

 

 

 

 

구멍,

 

 

나는 이곳으로 날아온 것이 아니라 떨어진 것이다. 날아오지 않아 하늘의 지도가 내게는 없었다. 몸이 줄은 어머니는 흘러내리는 바지를 잡기 위해 아버지의 허리띠에 구멍을 세 개 더 뚫고 있는 중이었다. 떨어져서 내가 처음 본 구멍이었다. 풀어진 가죽허리띠 같은 골목을 밟고 귀가한 나의 형제들은 어머니의 몸인 준 걸 알아차리지 못하였는지 형제들이 사오는 바지는 모두 하나같이 컸다. 아버지의 허리띠를 감은 어머니의 허리근처에서 줄곧 나는 맴돌았다.

 

 

 

<심사평>

시적 다양성의 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다

 

 

김보숙의 작품들을 얼핏 표면적으로만 읽으면, 시에서 정형적으로 추구하는 묘사나 시적 진술에서 어긋난 채 무의미한 반복과 시행 차원에서 거듭하는 모순적 진술의 나열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형이상학적으로 세계를 대상화한 인간 주체라는 차원에서 시를 세계에 대한 표현내지는 해석으로 보려는 완고한 시각에서 비롯한 편견일 뿐이다. 김보숙 시인의 작품 주체는 아마도 가야트리 스피박이 말한 서발턴(subaltern)’의 음성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서발턴이란 국내에서는 흔히 하위주체로 번역되는데, 정치를 함의를 좀 걷어내고 페미니즘의 논구에서만 보자면 남성주체의 언어적 구조, 즉 직접적으로는 문법이고 나아가서는 발화의 중심에 대한 대응적 개념이다. 이번에 수상작으로 결정된 그도 그녀도 아닌은 성정체성의 혼란이나 젠더적 억압 등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작품 전체가 화자, 도그, 피그 등 하위주체들에게 부여되는 억압적인 청취 상태에 대한 탁월한 반어라 할 수 있다. 다양하다는 것은 가급적 넓은 영역의 스펙트럼을 아우를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김보숙 시인은 아라문학이 지향하는 지점을 충실하게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감)

젖은 수건 말리는 자세로 시를 쓰겠다

 

 

수건을 적셔 널어놓는 것은 내 담당이었다. 적당히 젖은 수건을 살살 털어낸 후 아버지의 머리맡과 발밑에 널어놓고 방이 건조하지 않도록 습도를 맞추면 되었다. 사실 젖은 수건이 아버지의 치료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모르면서도 이 일을 꼬박꼬박 했던 이유는 수건 너는 일은 병간호 같지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시간에 맞추어 약을 챙기거나 팔 다리를 수시로 주물러야 하는 일보다는 쉽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나는 그만큼 아버지의 병간호를 두려워하는 자식이었다. 그런데 일이 어렵게 되었다. 물을 말리기 위하여 수건을 짜는 것이 아닌 물을 얻기 위하여 수건을 짜야 했기에 나는 매번 헐겁게 수건을 비틀어야 했고 짠 듯 안 짠 듯한 상태의 수건을 볼 때면 한 번 더 힘을 주어서 꽉 비틀어 짜고 싶은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럴 때는 그만하고 싶었다. 대야에 담긴 젖은 수건을 어두운 안방에 널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물 한 방울 남김없이 꽉 짜고 싶다. 탈탈 털고 싶다. 마당으로 나가 널고 싶다.

시를 쓰면서 무엇 하나 시원스러운 결과가 없는 내가 어느새 젖은 수건이 되어 상을 받게 되었다. 누군가는 젖은 나를 꽉 짜주길 바랬던 마음을 막비시동인들이 알아차리고 힘을 쓰신 것은 아닐까 하여 고마움이 크다. 탈탈 털겠다. 마당으로 나가 널겠다. 곧 마르면 드리리라. 젖은 곳 어디라도 닦을 수 있는 수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