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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아라세계


신연수 (시인)




인천문학사 (6)
―김동석의 시詩와 평론評論




인천에서의 본격적인 근대문학출발은 1929년 진우촌(본명 진종혁)
의 《습작시대》의 발간으로 비롯되었다. 그래서 인천문학을 이야기
할 때 그 첫 머리에 진우촌을 꼽는 것이다. 그리고 초창기 인천문학
사를 언급할 때 빠지지않는 문인으로는 《월미》를 발간한 김도인과
평론가 김동석, 아동문학가 현덕, 그리고 희곡작가 함세덕 등이 있
는데 이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김동석이다.
김동석은 1913년 9월 25일 경기도 부천군 다주면 장의리 403번
지에서 아버지 김완식金完植씨와 어머니 파평 윤씨 사이의 2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명은 옥돌玉乭이었고, 본관은 경주였다. 그
러나 형제 중 손위 누이인 금순今順이 김동석 출생 전인 1911년에 사
망하고 남동생 옥구玉求와 여동생 옥순玉順도 어릴 때 사망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1남2녀의 장남으로 성장한다.
인천공립보통학교 나와 인천상업학교 진학 김동석이 태어난 다주면 장의리는 지금의 인천시 남구 숭의동으
로, 그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숭의로타리에 가까운 평양옥 부근이
라는 설과 수봉산 밑이라는 설로 엇갈린다. 원래 장의리는 인천부
다소면이 행정구역이었던 장사래 마을長川里이 1914년 3월 1일 부령
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천군 다주면(다소면과 주안면이 통합)에
편입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이곳 장의리에서는 그 뿐만 아니라 동
생인 옥구, 옥순, 도순 등도 태어났다.
김동석이 인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것은 1922년 4월로, 그의
나이 열 살 때의 일이다. 그는 늦은 나이에 보통학교에 입학했는데,
그것은 보통학교 입학 전 서당에 다녔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동석의
인천공립보통학교 학적부에 있는 ‘입학 전 경력’를 보면 서당書堂이
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 서당교육은 영문학을 전공한 그에게 동양의
인문적 전통을 깊이 이해하도록 함으로써 이후 그의 문학활동에 큰
보탬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겠다.
김동석의 보통학교 시절은 평범했다. 일제강점기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김동석은 아버지가 포목잡화점을 경영해 경제
적으로 안정된 집안의 외아들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보통학교 시절 성적은 체조를 제외한 전 과목에서 만점에 가까
울 정도로 우수했다. 1928년 김동석은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상
업학교(현 인천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가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라고
상업학교에 진학한 것은 상업을 하는 부친의 권유에 의한 것으로 보
인다.
그리고 인상에 입학한 1928년은 조선에서 학생운동이 맑시즘의
영향을 받아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전개되던 시기였다. 실재로 김동
석은 1930년 1월 친구인 김기양, 안경복 등과 광주학생의거 1주년
기념식을 주도하다 퇴학을 당한다. 1학년 3학기제인 학교를 3학년 2
학기까지 수료하고 그만두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김동석은 당시 일본인 교장이었던 향정최일向井最一의 추
천과 편입시험을 거쳐 1932년 봄 서울에 있는 중앙고등보통학교로
편입하게 된다. 중앙고보로의 편입은 김동석에게는 일대 전환의 계
기가 된다. 먼저 시위경험은 그의 인생에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는
데, 후일 그의 작품에 보이는 민족적 자각과 맑시즘적 세계관은 이
경험으로부터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 아명인 김옥돌을 김동석
으로 개명하는가 하면 인천에서 기차를 타고 경성으로 통학함으로
써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또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된 것
도 이때부터이다.
중앙고보(24회)를 졸업하고 졸업생 중에서는 유일하게 경성제국
대학에 입학한 것이 1933년. 그는 경성제대에 입학할 때 장래가 보
장되는 문과 A조에 입학했는데, 예과 2년을 마치고 본과로 진학할
때는 법학 전공의 문과 A조를 버리고 영문학을 선택함으로써 비로
소 문학의 길로 들어선다.


1937년 9월 <동아일보>에 최초의 글 발표
김동석이 발표한 최초의 글은 경성제대를 다니던 1937년 9월 9
일 <동아일보>에 실린 「조선시의 편영」이다. 이 글은 김동석이 학
위논문으로 연구하던 매슈 아놀드(1822~1888)의 문학관에 기대어 당
대의 한국 현대시를 비평한 글로, 자신의 문학관과 지향을 잘 드러
낸 것이다. 그리고 1938년 김동석은 경성제대 본과를 마치고 졸업논
문「 매슈 아놀드 연구」를 쓴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는 한편 모교
인 중앙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한다. 그리고 중앙고보에 교편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전임강사로도 출강하
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낸다.
다음해인 1940년 김동석은 함흥 출신의 인텔리 여성인 주장옥朱
掌玉과 결혼을 한다. 신혼생활은 인천부 경정 145번지(현 배다리사거
리 부근)에 마련한 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꽃나무를 가꾸거나 월미
도를 산책하는 등 모처럼 실생활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 때의 기
억이나 경험들은 해방 후 나온 수필집『 해변의 시』에 수록된 수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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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1941년 장남 상국相國을 얻어 기뻐하지만 기
쁨도 잠시뿐 상국은 이듬해 병원에서 사망함으로써 깊은 슬픔에 빠
진다. 그리고 자식을 잃는 아픔을 잊고자 경성부 종로구 당주정 114
번지에 단칸 셋방을 얻어 이사함으로써 30년을 살아온 인천을 떠나
게 된다. 그 후 그는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경성 이사 후 그는 곧 둘째 아들 상현相玄을 얻는다. 그러나 한때
는 뜻이 맞지 않았던 부친이 1943년 사망하면서 남긴 재산으로 안양
석수동 안양풀장 부근의 나무가 많은 문화주택을 구입해 또다시 이
사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해방이 될 때까지 자연에 묻혀 조용히 지
낸다.


학병 영전에서
나는 울었다.


약하고 가난한 겨레
아름다움이 짓밟혀 슬픈 땅
조선의 괴로움을 안고
눈물을 깨물어 죽이며
마음에 칼을 품고 살아왔거늘


불의의 싸움터로
그대들 목 매여
왜노한테 끌리어 갈 때도
나는 울지 않는
악독한 마음을 가진 놈이었거늘


그대들 돌아와
왜노를 쫓고
독사 숨은 풀밭을 갈아
꽃씨 뿌리며
새로운 조선을 노래할 때도
나는 모른 척 도사리고 앉아 있었거늘


아아 이 어인 눈물이냐.
마음에 품었던 칼을 번득여
독사를 베어라.


겨레의 피를 빠는 징그러운 배암.
저 독사가 보이지 않느냐.
쌍갈래 갈라진 혀ㅅ바닥이
낼름거리는 것을 보라.


그러나 나는 울었다.
울기만 한 것이 원통해서
나는 또 흐느껴 울었다.


1946년 2월 4일 <자유신문>에 발표된 김동석의 시 「나는 울었
다」의 전문이다. ‘학병 영전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는 일제말기
전원에 묻혀 조용히 지내던 김동석이 해방에 대한 감격을 노래한 것
으로, 김동석의 시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걸어온 세상을 드러나게 하는 시
김동석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부터로 알려졌다. 하
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전혀 발표하지 않다가 광복 후인 1946년『 길』
이라는 시집을 펴냄으로써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음사에서 발간된
시집 『길』은 발간일이 표시되지 않아 정확하게 언제 발간되었는지
알 수 없는데, 일부 평자들은 1946년 1월에 발간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시집의 외형이나 지질, 장정 등과 유사한 오장환 시집『 병
든 서울』이 1946년 7월에 발간된 것을 볼 때『 길』 역시 같은 때에 나
온 것으로 보인다. 위에 인용한 시「 나는 울었다」가 1946년 2월 <자
유신문>에 발표된 것을 볼 때 시집에 실린 작품을 다시 신문에 게재
한 것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시집『 길』은 ‘풀잎배’, ‘비탈길’, ‘백합꽃’ 등 3부
로 나눠 모두 33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리고 ‘길
을 내놓으며’라는 저자 후기가 뒤에 붙어 있다. 이
중 김동석 시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시 몇 편을 살
펴본다. 먼저 제1부 ‘풀잎배’에 실린 첫 작품 「시
詩」를 보자.


소리 없이 들려오는 노래 한 가락-
가슴 속에 솟는 샘물의 선율일러라.


눈을 감아도 보이는 그림 한 폭-
뇌수 속에 피는 꽃의 묵화일러라.


옴짓 않는 팔다리 속에 춤추는 힘-
세포에 흘러내린 처용의 춤일러라.


내 넋과 몸이 지닌 인간의 유산-
태풍 속에 숨은 한 점 고요일진저!


                                                                                    ―「시」 전문



이 시는 김동석이 생각하는 시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동석에게 시란 소리 없이 들려오는 노래이
며, 눈을 감아도 보이는 그림이며,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 속에 춤추
는 힘이며, 넋과 몸을 지닌 인간의 유산인 것이다. 그리고 또 가슴속
에서 솟고, 뇌수 속에서 피어나며 또 세포에 흘러내리지만 정작 태
풍 속에 숨어 있는 한 점 고요인 것이다.



구두ㅅ발로 진흙발로 구루마바퀴로 말굽으로 밟히는 풀. 밟혀도 밟혀
도 죽지 않는 풀.
나는 너희들의 의지가 부럽다.
송아지, 사슴, 토끼를 먹이는 풀. 아기네 각시 되는 풀. 대보름날 장난꾼
들 쥐불 놓는 풀.
나는 너희들의 덕이 부럽다.
내 시방 깔고 앉은 풀. 내 죽은 후 내 무덤을 덮을 풀. 담뿍, 평퍼짐이,
여기도 저기도 돋아나는 풀.
나는 너희들의 생명이 부럽다.
                                                                                                ―「풀」 전문



풀의 생명력과 의지력을 노래한 또 다른 작품이다. 이 시는 민중
을 노래한 김수영 시인의 대표시의 하나인「 풀」이 연상되기도 한다.


삶은 기쁘고도 슬픈 것
죽음은 슬프고도 기쁜 것
죽어서 살려는 알암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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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의 뜻이 이러 하니라.


                                                                                               ―「알암」 전문



“떳다! 떳다! 쇠뿔장군이 떴다!”
아이들이 고함을 치면서 밭고랑 논두렁으로 뛰어 간다. 아이들이 고함
을 치면서 밭고랑 논두렁으로 뛰어 간다. 그렇게 불량하게 굴던 쇠뿔장군
이 반달한테 나간 모양이다.


                                                                                               ―「연鳶」의 일부



그리고 또 제1부에 실린「 황혼」,「 아침」,「 별」 등은 시보다는 동
시에 더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김동석의 시 일부
에 대해 습작이라고 평하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무리는 아니다. 하
지만 상당수의 작품은 나름대로 인정을 받아 해방공간의 어려움에
도 불구하고 정음사에서 단행본으로 발간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이다.


평론집 2권을 남긴 김동석
김동석의 주된 문학활동시기는 1945년 해방 후부터 월북을 할 때
까지 4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짧은 기간 동안 그는 시집 1
권, 수필집 2권(한권은 공저), 평론집 2권 등 모두 5권의 작품집을 발
간할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해방이 되자 김동석은 재직하던 보성전문을 그만둔다. 그리고 해
방 후에도 남아 있는 일제의 잔재세력을 청산하기 위한 일에 매달린
다. 그리고 안양을 떠나 다시 서울로 올라와 해방 전 써놓고 발표하
지 않았던 글들을 발표한다. 그리고 1945년 12월 대학동창인 노성석
의 도움을 받아 주간《 상아탑》을 창간한다.
1945년 12월 10일 창간된 주간 《상아탑》의 창간호는 46배판, 6
면에 불과해 잡지라는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다. 하지만 수록된 작품
을 보면 김동석이 쓴 창간사인「 문화인에게- 상아탑을 내며」를 비롯
해 이태준에 대한 작가론인 「예술과 생활」, 오장환의 대표작인 「병
든 서울」 등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이후 《상아탑》은 1946년 6월
제7호까지 발간되는데, 매호 실린 작품을 보면 한국문학사에 낯익은
작품들이 많다. 김동석이 평론가임을 감안할 때 먼저 김동석의 칼럼
이나 평론은 거의 매호 빠지지 않고 있으며, 청록파인 조지훈, 박목
월, 박두진 3인의 시작품 역시 거의 매호 실리는데 그
중에는 조지훈의 「완화삼」과 「낙화」, 박목월의 「나
그네」와「 윤사월」, 박두진의「 해」 등의 명시들이 모
두 이 《상아탑》을 통해 처음 발표되었다는 것이다.
중요한 수록작품은


제2호(1945.12.17) 김동석 평론 「 학원의 자유」.
제3호(1946.1.14) 김동석 평론 「 임화론」.
제4호(1946.1.30) 김철수 시 「 눈 내리는 거리에」.
제5호(1946.4.1) 김동석 평론 「정지용론」, 조지훈
시「 완화삼」.「 낙화」, 박목월 시 「 나그네」, 「 3월」.
제6호(1946.5.10) 김동석 평론 「 유진오론」, 박두
진 시 「 해」, 박목월 시 「 윤사월」, 김학철 단편소설
「상흔傷痕」.
제7호(1946.6.25) 신백수 단편소설 「 력」 등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동석이《 상아탑》을 발간
하면서 그의 문학적 기저인 ‘상아탑의 정신’을 강조한
점이다. 그 상아탑의 정신이란 “좌와 우를 막론하고
조선문학의 건설을 위한 지식인의 사명과 문화의 역
할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김동석 평론과 관련 가장 유명한 사건은 당시 우익의 대
표적 논자인 김동리와의 「순수문학의 논쟁」이다. 이 논쟁은 김동석
이 1947년 11월 잡지 《신천지》에 「순수의 정체-김동리론」을 발표,
당시 문단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비롯됐다. 이에 맞서 김동
리 역시 1948년 1월 《신천지》에 「생활과 문학의 핵심-김동석 군의
본질에 대하여」를 발표했는데 이렇게 촉발된 순수문학 논쟁은 70년
이 지난 지금도 한국논쟁사의 대표적인 논쟁으로 알려져 있다.
김동석의 평론은 2권의 평론집인 『예술과 생활』(1948.2.29 박문출
판사, 46판 229면)과『 뿌르조아의 인간상』(1949.4.1 탐구당서점, 46판 274
면)’ 등에 집약되어 있다. 특히 「이광수론」을 비롯하
여「 안회남론」,「 속안회남론」,「 김동리론」,「 김광
균론」,「 이태준론」,「 임화론」,「 유진오론」,「 정지용
론」,「 오장환론」 등 10여 편에 이르는 작가론은 좌우
문인을 가리지 않고 비평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광복
이후 민족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펼쳐 보였다는 점
에서 높이 평가된다 하겠다.
또 「고민하는 지성-싸르트르의 실존주의」나 「사
진에 대한 예술성」,「 한자철폐론」 등은 당시로서는
파격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앞서가는 비평으로 평가
된다. 그런 면에서 해방공간의 우익을 대표하는 김동
리와의 순수논쟁 당시 김동석을 단순하게 ‘좌익계열
의 문학평론가’ 정도로 가볍게 취급하던 어리석음을
지금까지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끝으로 김동석의 월북시기에 대해서는 1949년과
1950년으로 설이 갈리고 있는데, 이것은 1949년 5월
《희곡문학》에 발표한 수필「 쉐익스피어의 주관酒觀」
과 같은 해 5월1일 <태양신문>에 발표한 수필 「봄」
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작품발표나 남쪽에서의 활동
이 없는 것으로 볼 때 그 이후에 월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월북
상아탑 4호에 실린 김동석 칼럼
동기에 대해서는 김동석이 1948년 <서울타임즈>
의 특파원 자격으로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당 및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하는 김구 선
생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는데 이 때 평양에서 본
후 월북동기가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동석이 가족과 함께 월북한 이후 그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1958년 남파됐다가 붙잡혀 수
감 중이던 이구영 씨와의 인터뷰(1996년)를 근거
로 김동석은 월북 후 북측에서 잠시 활동하다 남
로당 숙청 때 함께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신연수 시인. 인천문협 회원, 근대서지학회 회원. 법률신문사 이사 겸 총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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