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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시집 속의 시



정미소





가지 않는 길
―최서연 시집『 물은 맨살로 흐른다』, 김설희 시집『 산이 건너오다』




젖은 상처가 마르는 시간
잠시만 봐달라는 부탁으로
마지못해 맡아버린 두 번째 주인도
냄새 나서 키울 수 없다는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좁쌀만 한 눈곱이 엉겨 붙은 눈은
햇살이 거미줄 타는 맨홀이었고
마른 솔가지 같은 꼬리는
등껍질 벗겨진 벌레로 엉덩이에 붙어있었다
시간에 맞추어 밥을 주며
이름을 불러 준 지 오래되었지만
어쩌다 손이 닿을라치면,
불에 덴 듯 벌겋게 털을 세운다
살이 돋지 않는 상처란 저런 것인가
꼬리를 물고 있는 웅크린 등을 볼 때마다
감자 싹처럼 눈뜨고 있는 나의 상처는
엄살과 비명뿐인
과분한 사치였음을 생각한다.


                                                                                                       ―최서연 「상처」 전문



  반려견은 가정에서 인간과 함께 사는 개의 총칭이다. 반려견이 인간과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반이라고 한다. 개의 털에 서식하는 벼룩을 잡는 약이 개발되면서 애완용 개가 사람의 침대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반려견은 저 출산과 핵가족, 1인 가족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의 친구이자 가족이 되었다. 최서연 시인은 이웃이 맡게 된 반려견의 처지가 안쓰러워 집에 들였다. 개의 눈언저리에 낀 눈곱을 살피다가 공황상태에 빠진 초점 잃은 눈빛을 읽는다. 얼마나 목욕을 걸렀는지 꼬리는 마른 솔가지처럼 말랐고, 엉덩이에는 먼지가 딱딱하게 굳어 벌레처럼 자리를 잡았다. 주인의 품에 안겨 재롱을 부리던 꼬리가 갑작스레 맞이한 환경의 변화는 충격이며 공포다. 두 번째 주인은 웅크린 불안을 씻겨주려고 강아지에게 치즈 맛 나는 개 껌과 베이컨 맛 간식으로 목욕을 유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안한 개는 사료도 먹지 않고 문소리에 귀 세우며 주인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성대 수술한 벙어리울음이 지쳐 쓰러져 누운 등으로 안타까운 달빛이 내린다. 사랑받을 권리, 사랑받음에 길들여진 생명에게 가혹한 것들은 그림자처럼 도사린다. 우리나라에서 반려견이 가장 많이 버려진 해는 2008년도 세계금융위기 당시이다. 그해의 국립수의과학검역원통계를 보면 5만1000마리, 하루에 140마리의 개가 주인을 잃거나 버려졌다. 갑작스레 불어 닥친 경제적위기
가 반려견을 거리로 내 몰았다. 버려진 개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
면 가슴이 아프다. 막막한 기다림과 굶주림이 낯선 골목을 떠돌다
가 올려다 본 하늘엔 별이 있었을까? 이름을 부르며, 시간 맞춰 밥을
먹고, 산책을 하는 온실의 품을 기억한다. 반려동물은 장난감이 아
니라 가족의 일원이다. 지난 해, 생명존중과 행복공존을 주제로 하
는 ‘펫 케어 페스티벌’을 뉴스로 접한 적이 있다. 반려동물에 대한 올
바른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주인과 애완견이 함께 참여하여 도그요
가, 미용시현. 아로마테라피와 문제행동교정도 받을 수 있는 행사였
다. 이제 애완견은 사육하는 동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지의 일
환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할 때가 왔다. 최서연 시인이 안쓰러워 품
어온 상처 투성이의 개가 마음을 열기를 바란다. 시인의 손에 앞발
을 내밀고 꼬리를 흔들며 안심하고 밥을 먹기 바란다. 목욕통에 누
워 배꼽도 보여주길 바란다. 가족을 잠깐 이웃집에 맡겨두고 돌아오
지 못하는 주인의 젖은 걸음이 햇살 아래 가벼워지길 바란다. 시인
이 어루만질 상처의 등이 따뜻하다.


허망한 들에, 나비야 날아올라라.


이렇게 온 천지가 눈부신 날은
눈 덮인 길을 걸어 보자
누군가 징검돌처럼 놓은 발자국을 따라 가 보자
바람만 다녀 간 눈 위에
뒤꿈치를 눌러놓고 그림을 그려보자
몸을 둥글게 한 번 돌려 해바라기를 만들어보자
빽빽한 씨앗의 자리에
뺨때리는 바람을 막아보자
커다란 나무 하나에 다람쥐 한 마리 그려보자
죽어도 달아나지 못하는 다람쥐
그때 햇살은 눈송이처럼 스쳐지나간다
신발 가장자리로 정교히 선을 긋고
발에 걸린 눈자리만큼 꽃들을 만들어보자
그림자도 없이 누워보자
햇살 퍼지면 금방 물로 돌아갈 것들과 함께
손발이 곱아지고 에이도록 그려보자.


                                                                                                             ―김설희 시 「발 그림」 전문


  눈 덮인 날의 천지는 환하다. 환하면서 고요함 속에 놓인 눈길은 발자국을 부른다. 눈이 내린 풍경을 떠올리면 미국의 시인 로버트프로스트의 시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서서’가 떠오른다.시인은 눈 내리는 날 숲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눈 쌓이는 모습을 바라본다. 멀리 보이는 마을과 가볍게 스쳐가는 바람소리와 얼어붙은 호수, 캄캄한 저녁. 말방울을 울리며 잠들기 전에 가야할 먼 길이 남았음에도, 시인은 눈 내리는 저녁 숲에서 작은 새와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내리는 눈송이의 부드러운 속삭임소리를 듣는다. 김설희 시인도 눈 쌓인 길을 코끝이 빨개지도록 걷는다. 누군가 지나간 발자국을 따라 걷기도 하고, 곁가지처럼 내 발자국을 남기기도 하며 왔던 길을 돌아보기도 한다. 문득 순백의 눈 위에 멈춰 서서 ‘가지 않은 길’의 목마른 기다림처럼 눈을 꾹꾹 누른다. 꾹꾹 눌린 발자국 속에 해바라기의 꽃말이 서성거린다. 기다림은 일상의 뒤켠으로 물러섰다가 마음이 고요해지는 날 눈과 함께 다가온다. 빽빽한 씨앗이 발아하는 자리에 아직도 환한 눈웃음을 심는다. 마음 또한 아득한 과거로 내달린다. 강우식시인의 시 ‘눈사람’에 보면 시인은 까까머리 중학생일 때, 눈 내린 날 동급생인 여학생의 집 대문 밖에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 놓고 온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모습을 볼 수 없는 여학생을 생각하며 눈사람을 만드는 시인의 빨갛게 언 손이 아리다. 첫사랑 같은, 주체할 수 없는 콧물범벅의 눈 오는 날이 한 폭의 그림으로 남는다. 김설희 시인은 눈 위에 해바라기와 상수리나무와 발이 있어도 달아날 수 없는 다람쥐 한 마리를 가두어 둔다. 죽어도 달아나지 못할 나만의 다람쥐와 눈밭을 달린다. 눈밭을 달리는 발자국마다 오색무지개나비, 팔랑나비, 각시노랑나비가 봄처럼 날아올랐으면 좋겠다. 발자국이 스친 눈자리마다 꽃이 피면 좋겠다. 금잔화와 노랑수선화, 백합, 수레국화도 무더기 무더기로 피면 좋겠다. 햇살이 다가서면 물이 될 그림자조차 거둘 수 없는 허망한 발 그림. 시인과 눈 덮인 길을 걸으며 바람만 다녀간 자리의 고요를 오래도록 응시한다.






정미소 2011년《 문학과 창작》으로 등단. 시집『 구상나무 광배』,『 벼락의 꼬리』. 리토피아문학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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